[충청논단] 이희영 배재대학교 기초교육부 교수

개강을 했다. 교정은 다시 학생들로 왁자지껄하다. 3월 1주차에는 입학식에 개강 총회, 단과대학이나 학과별 OT 등의 행사로 정신없이 바쁘다. 어디서나 학생이 가득한 교정에는 항상 활기가 있어 웃음이 난다.

이 맘 때에는 신입생과 재학생을 한 눈에 구분할 수 있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과 긴장이 얼굴에 묻어나기 때문이다. 시간표를 들고 강의실 건물이 어디인지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어색하게 찾아 들어가는 신입생들의 풋풋함을 보면서 싱긋 미소 짓는 일은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올해는 그런 즐거움이 다른 해보다 더욱 컸다. 평생교육융합학부의 신입생 덕분이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은 작년 국가평생교육원이 주관하는 라이프 2.0 사업에 선정되어 평생교육융합학부를 설치했다. 평생교육융합학부는 만 30세 이상의 성인학습자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만학도 전용 학과이다. 1년 동안 이 학과를 운영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전용 강의실과 라운지를 설치하는 등의 준비를 거쳤고, 드디어 올해 첫 신입생 34명이 입학했다. 학생들의 나이는 3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했는데, 설렘과 긴장이 공존하는 얼굴, 배시시 웃는 미소는 여느 신입생과 다르지 않았다.

그 중 기억나는 몇몇 신입생이 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60대 어르신은 수업 시간보다 2시간 빨리 학교에 왔다. 왜 이렇게 일찍 오셨냐고 여쭤보았더니 그 이유를 한 단어로 설명했다. “설레서요” 대학 공부가 설레는 일이라니, 나도 오랫동안 잊었던 감정이었다.

그 날은 평생교육융합학부 첫 학생회장을 뽑는 날이었다. 후보가 5명이나 나왔다. 학령기 대학생들의 학생회장 선거는 보통 자신이 어떻게 일할 것인지를 간략히 말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이분들은 달랐다. 후보로서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왜 이 나이에 공부를 시작했는지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어떤 분은 배움의 시기를 놓쳤던 아쉬움을 이야기했다. 또 다른 분은 인생을 절반 정도 살았다는 50대에 들어서자마자 앞으로의 삶이 불안했다며, 대학 공부를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서 앞으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겠다는 분도 계셨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들이 용기를 내서 공부를 시작했고,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이 후회되지 않도록 학교생활을 앞장서서 치열하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선거는 치열했다. 동률의 투표 수가 나와 두 번이나 재선거를 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 90대 어르신께서 내게 고개 숙여 인사하신다. 사실 그 어르신은 입시 과정에서부터 몇 번이나 뵈었는데, 자신의 나이의 절반도 살지 않은 젊은 교수인 날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며, 몇 번이고 말씀하신다. “교수님, 아무쪼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그 겸손과 열정은 경외라는 단어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사실 늦은 나이에 대학 공부를 선택하는 일은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도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나이에 무슨 공부냐. 그것을 배워서 어디다 쓰느냐’며 공부의 가능성마저 단칼에 자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분들은 다르다. 어떻게 대학에서 공부를 하실 생각을 하셨냐고 여쭤보면 “사람이 평생 배워야지요”라고 답한다. 그리고는 다시 까르르 웃는다.

평생을 공부할 수 있는 열정과 겸손, 그리고 그 시간들을 설레어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긴장감이 가득했던 첫 날이 무사히 끝났다. 생각해보면 그 강의실에서 가장 긴장한 것은 필자가 아니었나 싶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