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산책] 김법혜 스님·철학박사·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한국의 출산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OECD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0명대인 국가는 우리가 유일하다. OECD 평균(1.58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뺀 나머지 37개국은 모두 1명 이상이며, 우리나라 다음으로 낮은 스페인(1.19명)과도 격차가 크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전 세계에서 조명하고 있다.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사상 처음 0.6명대로 떨어져 충격이 작지 않다.

지난해는 연간 출산율이 0.72명이었다. 출산율이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렇게 떨어지다가는 한국인은 ‘멸종위기종’이 될지도 모른다. 문제는 내년에도 출산율이 더 떨어질 것이란 점이다. 사회전체가 쪼그라들어 십수 년 후엔 초등학교 학급당 학생 수는 10명으로 줄고 고용, 재정, 교육, 국방 등 전 부문에 심각한 타격이 오게 되는 암울한 사회가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된 건 한마디로 아이 낳고 키우기 어려운 환경인데, 해법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저출산의 늪에 빠진 것은 아이 키우는 행복과 즐거움을 몰라서가 아니다. 요즘 시대에는 애들 땜에 웃는 것보다 애들 키우는 환경 때문에 더 우울한 날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껏 역대 정부는 저출산 해소 대책에 돈을 쏟아부었다. 2006년부터 380조 원을 썩어도 참혹한 성적표를 받아든 것이 방증이다. 하지만 아이를 낳으면 부모급여·양육수당·아동수당 등 현금성 지원은 확실히 늘어났다.

아이를 기르는 돈을 주기 전에,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은 사회·경제적 환경을 구축하는 게 우선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출산을 선택하는 자신(부모)과 세상에 나올 아이의 ‘삶의 질’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들의 입장에서 출산은 ‘자신들의 선택’이 아닌 ‘지난한 현실’이 출산율의 바로미터였다.

통일 이후 출산율이 급락했던 독일은 노동시장의 성차별 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여성 고용 안정과 성별 임금 격차 축소 등을 통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과 출산율을 동시에 높인 결과 출산율은 자연히 높아졌다.

스웨덴도 세계 최초로 유급 부모 휴가제를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아빠 할당제’도 시행했다. 배우자도 90일간의 육아휴직을 쓰도록 의무화했다. 이 같은 해외 사례 등을 비춰 볼 때 과감한 출산 선택 쪽으로의 변화가 출산율의 증가를 입증했다.

따라서 육아는 여성 몫이 아닌 부모 공동의 몫이라는 인식이 확인돼 제도의 뒷받침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려면 남녀 모두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의 필요성이 절실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는 아이 양육비 지원이 세계 1위이고 출산율 악순환의 미해결도 최우선이어서 흔들림 없는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저출산국이란 불명예를 안은 한국은 출산율의 저하가 전 세계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엔 기업들이 자녀를 낳은 직원들에게 1인당 1억 원씩 파격적인 장려금을 주는 사례까지 등장하고 있지만, 장려금으로만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세계 최악의 저출산 원인은 청년 취업이 어렵고, 내 집 마련이 어렵고, 아이 낳아도 보육과 일 병행이 힘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녀 사교육 부담에 허덕이다 보니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풍조가 생겨난 것이다. 저출산율에 대한 대책을 고민하는 칼럼에도 야유하는 댓글들은 넘쳐난다. ‘우리로 충분하다. 너희들 노예 한 명을 더 낳아주는 것은’ ‘농촌 총각들아, 그냥 혼자 살아라. 애 낳고 도망가 버리는 매매혼의 문제가 너무 많다.’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부정적 관념을 바꾸지 못하는 한 백약이 무효다. 저출산은 한국 사회에 대한 우울한 성적표다. 우리나라 사회 전반의 상황이 아이를 낳아 키우기에 버겁다는 이야기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다는 말이다. ‘아이를 낳으면 돈을 주겠다’는 1차원적 대책이 아닌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고차원적인 ‘그랜드 플랜’이 필요하다. 아이를 부담이 아닌 축복으로 여길 수 있도록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이며 지속 가능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살 수 있다.

정치권도 머리를 맞대 지원에 나서야 한다. ‘인구소멸 국가 1호’의 현실을 모두 무겁게 받아들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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