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고 채수근 상병 사건과 관련한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를 받고 있는 주요 피의자를 대사로 임명했다는 게 매우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지난 4일 윤석열 정부는 이종섭 전 국방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전 장관이 공수처 수사를 받는 피의자 신분으로 출국금지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지난 6MBC는 이 전 장관이 이미 석 달 전 피의자로 출국금지된 사실을 보도했다. 당연히 이번 임명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수사 대상인 인사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특명 전권대사로 임명한 이유가 무엇인지, 수사가 한창인데 정상적으로 출국해 대사로 부임할 수 있느냐는 현실적인 의문까지 제기됐다.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법무부는 자체 긴급 회의를 거쳐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 해제 방안을 검토했고, 이 전 장관은 공수처에 자진 출석해 적극적인 수사 협조를 약속했다. 그리고 법무부는 이에 호응하듯 8일 내부 인사로 구성된 출국금지심의위를 열고 곧바로 출국 금지 조치를 풀어줬다. 일사천리로 모든 일이 진행됐는데, 모두 전례없는 일이었다.

현재 공수처의 수사는 이 전 장관의 참모들과 하급자들을 상대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직권남용죄의 특성상, 최종적인 직무상 권한이 있는 이 전 장관이 참모들과 공모한 것으로 범죄혐의가 구성된다. 최고 책임자인 이 전 장관에 대한 조사가 불충분할 경우, 차례로 지시를 하달받은 하급자들에 대한 수사와 기소까지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대통령실은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 사실을 몰랐다는 해명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해명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모두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출국금지 소관이 법무부인데다 인사검증 또한 동일한 법무부에서 하고 있는데, 대통령실이 이를 몰랐을 리가 없다는 것이고, 만약 몰랐다면 인사검증이라는 국가 시스템에 구멍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 국방장관의 출국금지 해제에 대해선 보수 언론들조차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9일 사설에서 애초 수사 결과가 과잉이라고 해도 어쨌든 이 대사는 형사 사건의 피의자 신분이다. 대사 임명 때까지 공수처 조사를 한 번도 받지 않은 상태였다법은 법이다. 굳이 이런 사람을 대사로 발탁해야 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한국일보도 사설을 통해 법무부는 기다렸다는 듯 어제(8)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잘 짜인 각본처럼 일사천리라며 출국금지를 결정하는 부처도, 1차 인사검증을 하는 부처도 모두 법무부다. 한 지붕에 딴살림을 차린 것도 아니고 어떻게 출국금지 사실을 모를 수 있단 말인가라고 꼬집었다.

호주 정부는 이 전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과 관련해 아그레망(agrément)을 했다. 아그레망은 대사나 공사 등의 외교 사절을 다른 나라에 파견할 때, 정식으로 임명하기 전에 파견될 상대국으로부터 받는 동의다. 여기서 만약 호주 정부가 이 전 장관의 피의자 신분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면, 이는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고 채수근 상병 사건의 핵심 피고발인을 대사로 임명했다면 인사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각에서 윗선수사를 차단하기 위한 도피성 인사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 전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을 재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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