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두고 말들이 참 많았다.

친명 공천이니 비명 횡사니 등등의 말들은 여러 언론들을 통해 확대 재생산됐고, 이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공고화됐었다.

친명, 비명, 반명으로 예비후보들의 성향을 가르는 것이 썩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비명횡사라는 말로 표징되는 이번 현역의원들의 대거 탈락은 많은 시사점을 남기고 있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하위 평가를 받은 현역의원들에게 가해진 페널티가 주효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 페널티를 가한 주체가 동료 의원, 보좌관, 당원, 일반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권리당원들과 일반인들의 정치인에 대한 인식이 매우 엄혹하고 날카로워졌다는 것이다. 이는 유명세와 현역 프리미엄에 기대어 편안한 공천을 받는 일이 이젠 옛일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탈락을 주도했던 당원들과 일반인들의 민심은 21대 국회 현역의원들의 나태함과 무기력함과 분열 획책을 매섭게 질타했던 것이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의 패배, 그리고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 등을 지켜본 당원들과 일반인들이 그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패배는 늘 쓰라림과 좌절감을 동반한다. 특히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라는 말이 통용되는 정치판에서의 패배는 그 아픔이 더욱 깊다. 1등만이 생존하는 적자생존, 정글의 법칙이 정치판에선 늘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자신의 패배에 대해 승복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를 기화로 탈당을 강행하고 이합집산, 합종연횡이 횡행하게 된다. 어제의 적에게로 당적을 옮기는 경우 또한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공천되지 못한 민주당 현역의원 몇 몇이 보여준 모습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청주 청원선거구 공천에서 배제된 변재일 의원이 당에 남아 총선 승리를 돕겠다고 선언했다.

변 의원은 지난 8일 입장문을 내고 저의 결심이 당이 하나가 되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면서 멀리 보고 크게 보기로 했다. 20년 몸담은 당과 동지들을 떠날 수 없었다고 말했다. “5선은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도 했다.

원내대표까지 지낸 박광온 의원이 당내 경선에서 자신을 이긴 김준혁 예비후보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약속했다. 가장 큰 이변으로 여겨질 만큼 결심이 쉽지 않았으리라 짐작되지만, 그는 김 예비후보와의 만남을 먼저 제안했다.

그는 이번 경선 승리를 축하한다모든 시·도의원, 지지자들과 결집해 반드시 총선에서 승리하도록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밝혔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인재근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도봉갑에 전략 공천된 안귀령 더불어민주당 상근 부대변인에 관해 젊고 여성이고 그래서 좋다고 말했다. 안 부대변인 관련 질문을 두 번 받고는 젊고 여성이라 좋다. 그게 끝이라고 답했다.

정치인이 가져야 할, 가장 앞선 덕목은 정체성(identity)과 정치적 철학, 대의명분이다. 그것은 여야를 떠나 모두에게 통용된다.

개인적인 패배의 쓰라림이야 어찌 없겠는가. 그럼에도 이른 바 정치 철새가 난무하는 이전투구의 정치판에서 이들이 보여준 승복의 미덕은 매우 의미있게 비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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