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눈] 김재국 문학평론가·에코 색소폰 대표

우리가 길을 걷을 때 수시로 맞닥뜨리는 것이 고개다. 고개를 넘다보면 평지를 만나고 그것이 이어지는가 하면 다시 고개가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이와 유사하다. 과거엔 외세의 침탈로 위태로운 시기가 많았다면 현실은 내부적 갈등이 심각한 편이다. 빈부격차와 세대격차 및 성별차이과 이념차이로 나라가 혼란스럽다.

나라가 이 지경이니 정이 달아날 만도 한데 '국뽕'이란 말에 귀가 솔깃하니 애국심은 타고나는 것이 분명하다. 국뽕은 최근 유튜브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단어이다. 이 말은 국가와 히로뽕을 합성하여 만들어 낸 인터넷 신조어다.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의 환상에 도취되어 찬양한다는 뜻이다. 처음엔 비뚤어진 애국심을 비아냥거리는 부정적 의미였으나 최근엔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내는 말로 널리 사용한다.

이를테면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BTS나 블랙핑크 및 유명 운동선수를 포함한 예체능 스타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아울러 강대국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수출을 하는 경제적 경우를 제시할 수 있다.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K 푸드나 K 방산, 한글 배우기 열풍 등의 문화적 사례도 없지 않다. 이러한 예체능이나 경제적, 문화적 성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K팝 스타개인이나 소속사의 보이지 않은 노력의 산물이다. 이들은 유튜브나 SNS라는 새로운 매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기존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새롭게 시작하여 여기까지 온 것이다.

우리나라 국적의 브랜드를 부착한 자동차가 전 세계에 우렁찬 엔진소리를 내며 힘차게 달릴 수 있었던 것도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산업전사 덕분이다. 아울러 K 방위산업이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도 산업현장의 땀과 기업의 기술과 엄격한 품질 관리를 위해 노력한 결과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서 K 푸드를 맛보기 위해 줄을 서고, 한글을 배우기 위해 안달을 하는 외국인을 보면 국뽕이 차오르면서 다시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낀다.

콜린 마샬의 '한국 요약 금지'라는 저서에서 한국인은 다른 나라사람을 만날 때 한국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를 묻는다고 한다. 이는 한국인이 자신들의 장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부정적 면에 집착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충분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 하겠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장점을 외국인들이 먼저 알고 애정의 눈길을 보인 셈이다. 이러한 세계적 분위기에 걸맞게 우리 것을 인정하고 소중히 여기는 긍정적 시각부터 가져야 한다. 특히 서로 다른 집단이나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 간의 대화로 서로의 의견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아울러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를 가질 때 내부적 갈등의 고개를 넘을 수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늘 새로운 역사적 고개를 넘어야 하는 사명을 타고났다. 고개 너머에 평지가 기다리고 있고, 평지를 지나면 고개를 만난다. 그것은 마치 신을 모욕한 죄로 바위를 산 정상에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의 운명과 마찬가지다. 힘들게 정상에 올린 바위가 다시 굴러 떨어진다 해도 다시 정상에 올려야 한다. 이러한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은 우리 한국인 삶의 일부로 국뽕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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