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지난 글에서 소개했듯이 ‘왕은 즐긴다’(1832)는 왕의 어릿광대 꼽추 트리불레가 왕의 암살을 시도한다는 체제 전복적 설정 때문에 초연 후 바로 상연이 금지된다. 그런데 엄격한 검열로 출판과 공연이 금지되어 무대 뒤로 내려지고 대중에게 잊힐 위기에 처한 위고의 희곡은 베르디의 각색으로 오페라 ‘리골레토’(1851)로 탈바꿈되어 무대에 오르게 된다.

이전에도 위고의 ‘에르나니’를 오페라로 각색한 경험이 있는 베르디는 ‘왕은 즐긴다’ 대본을 읽고 오페라 성공을 확신하여 대본작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에게 원작을 오페라 대본으로 각색하도록 의뢰한다. 피아베는 당시 북이탈리아를 지배하던 오스트리아 당국의 검열을 피하고자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삭제하고 ‘저주’라는 제목으로 대본을 완성하지만, 당국은 일국의 왕을 모독하는 오페라라며 공연을 금지한다.

결국 원작처럼 공연 금지 처분을 받게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베르디는 오페라 공간 배경을 프랑스에서 이태리 만토바로 바꾸고, 원작의 실제 역사 속 인물들을 가공의 인물로 바꾸어 프랑수아 1세는 만토바 공작으로, 광대 트리불레는 프랑스어의 익살꾼 ‘Rigolo’에서 유래한 ‘Rigoletto’로 바꾼다. 우여곡절 끝에 ‘리골레토’는 1851년 3월 11일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 무대에 오르게 되고, 이후 10년 동안 250개 전 세계에서 공연된다. 만토바 공작이 부르는 유명한 아리아 ‘여자의 마음’도 엄격한 검열을 거친 뒤 전 베네치아에 퍼져나간다.

원작의 배경과 인물들 이름은 바꾸었지만 소외계층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던 베르디는 어릿광대이자 장애를 가진 비천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원작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충실히 오페라에 반영한다. 또한 그는 어릿광대의 이름을 직접 오페라 제목으로 삼아 귀족이나 지배계층이 아닌 민중을 대변하는 정치적 입장을 강조한다. 꼽추 리골레토는 오페라에서 가장 입체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로 공작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어릿광대의 특성상 야비한 말과 행동으로 귀족들의 미움과 원한을 사지만 딸에게만은 지고지순한 사랑을 지닌 인물로 극 마지막에 딸의 죽음을 목도하는 그의 비애가 더욱 깊은 여운을 준다.

베르디의 오페라는 이전 다른 작가들의 오페라에 비해 폭넓은 변화와 다양성을 보여준다. 베르디는 평생 총 26편의 오페라를 작곡하였는데, 작곡 시기에 따라 그의 작품들은 초기, 중기, 후기 작품으로 나뉜다. 그의 초기 작품들에서는 기존 전통적 오페라 스타일을 따른다면 ‘리골레토’부터 시작되는 중기 작품부터는 차츰 전통적 규범에서 벗어나 베르디만의 새로운 개성적 스타일을 구축해나간다.

연극성은 음악성을 높이고, 음악성은 연극성을 높인다고 보았던 베르디는 ‘리골레토’ 각색 과정에서 원작의 긴 대사들을 과감하게 삭제하고, 원작에 없는 노래들을 삽입하여 원작에 음악적 서정성을 풍성하게 덧입히는가 하면, 기존 아리아 중심 오페라 대신 이중창, 삼중창, 사중창 등의 대화적 악곡 형식의 다채로운 변화를 통해 음악에 대화적 연극성을 가미하는 등 연극성과 음악성의 일치를 지향하는 오페라 서술의 혁신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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