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김헌일 청주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지난 3월 4일까지 정부는 전국 대학을 대상으로 의대 정원 신청을 받았다. 그 결과 서울·수도권 소재 13개 대학이 1031명 증원을 신청했고, 비수도권 27개 대학은 2471명으로 총 3401명 증원을 신청했다. 정부는 2025학년도부터 수도권 400명, 비수도권 1600명으로 총 2000명 의대 정원을 증원해 2035년까지 1만 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과연 가능할까? 경영혁신을 위한 대학 구조조정 경험에 비추어 판단해보면, 의대처럼 국민 생명과 직결되어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학과는 그 준비에만 수년이 필요하다. 학사 4년 과정의 학과 증원, 신설도 대개 시행 후 10년 정도 되어서야 평가가 가능해지는데, 전공의 양성을 위해 인턴, 레지던트 과정이 필요한 의대는 그 특성상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번 2000명 증원은 현재 3058명 정원을 5058명으로 갑자기 65.4% 늘리는 것으로, 불과 3개월 정도에 불과한 시간에 의사결정을 하고 정책 시행까지 밀어붙이는 개혁이다. 몹시 불안하다.

국민은, 발표 직후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듯, 대체로 반기는 듯했다. 의사들의 대규모 이탈에 분노마저 했다. 그러나 의사 집단의 반발이 갈수록 거세지고, 의료공백 사태가 국민피해로 이어지자 점차 이성적 판단을 하게 됐다. 의사 공급이 늘어나는 것은 좋지만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무리한 정부 정책에 그 순수함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2000명이라는 숫자에 대한 충분한 사전 검토 여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제조공장 증설이야 시장과 수익성이 확보되면 밀어붙일 수 있지만, 의대 정원은 국민 생명에 관한 것이기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의 대국민 설득 논리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 논리 이외에 다른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증원 신청한 각 대학 사정상 2년 안에 정원을 2배 가까이 늘린다는 것은 교육의 질을 장담할 수 없다. 문제가 되는 ‘지역과 전공 분야 쏠림’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의사 집단행동으로 전국 의료 서비스 시스템은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고, 국내 빅5 대형 병원마저 탈이 났다. 대개 의과대학 교수들은 금전적 보상보다는 명예와 공익, 후학 양성을 더욱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 사태에서도 마지막까지 의료공백을 메우고 갈등 봉합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것 또한 의대 교수들이었다. 이제는 의대 교수들마저 주저앉았다. 더는 국민 목숨을 살려줄 곳을 찾기 어렵다. 방향 잃은 앰뷸런스는 사이렌을 멈추었다.

정부는 4.10 총선 전까지 2000명 증원 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한다. 의사 처벌 방침을 시행에 옮겼다. 이대로 밀어붙일 것만 같다. 정부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할까? 대통령 거부권마저 행사했던 간호사법을 재검토하며 의사 집단을 압박했고, 대통령은 ‘상황이 바뀌었다!’라고 발언했다. 법과 원칙을 최우선으로 삼아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대통령이었기에 이 발언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안정을 우선하는 점진적 변화와 정부의 규제를 최소화하고 시장 경제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보수다. 의사 증원은 어쩌면 국민 모두의 희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모한 개혁에 국민 생명이 위협을 받는다면 그 정책은 누구를 위한 정책일까? 이제라도 정치적 셈법은 잠시 뒤로 하고 진정 국민을 우선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신뢰하고 지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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