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기상나팔 소리가 들린다. “모두 겨울잠에서 깨어나세요 새봄이 왔어요” 목젖을 다 들어내고 일곱송이 군자란이 합창을 하듯이 봄소식을 전한다. 주황색 군자란이 일제히 기상나팔을 불면서 활짝 피었다. 꽃샘추위 무렵에 군자란이 피기 시작하면 우리 집 베란다 화단은 군자란의 기상 나팔소리에 화들짝 깨어난 봄의 화신들로 술렁거린다. 시샘하듯이 꽃망울을 가지 끝마다 매달고 개화를 준비하는 긴기아난과 베고니아, 제라늄들이 기지개를 켠다. 위풍당당하게 꽃대를 힘차게 올리고 핀 군자란은 화려해 보이지만 꽃말처럼 고귀하고 고결하며 우아하다. 고급스러운 샹들리에 조명처럼 환하게 등불을 밝힌다.

군자란이 나와 함께 동거 한지도 이십여 년이 지났다. 오래전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을 때 지인이 안고 왔던 축하 화분이었는데 해마다 봄이면 기품있게 피는 모습에 유독 마음을 주던 꽃이었다. 백자 화분에 군자란은 한 폭의 동양화처럼 고전적인 멋이 있다. 유연하지만 힘있게 뻗쳐 있는 싱싱하고 푸른 잎은 꽃대와 화관 같은 꽃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 꽃은 꽃이되 가볍지 않고 기개마저 느껴지는 품격 있는 여인의 자태로 다가왔다. 향기로 유혹을 하지 않는 꽃이다. 향기를 느끼려고 가까이 다가가야지만 있는 듯 없는듯한 은은한 향은 사대부 집안 고택의 안주인 같은 품격이 느껴진다. 군자란이 피면 혼자 보기가 아까워서 지인들을 초대하고 차담을 나누던 시절이 있었다.

그 후 어느 해 겨울 이삿짐을 꾸려야 했던 날, 작은집이어서 버리고 올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 많았지만 나에게는 정이 들어서 가족이나 다름없던 반려식물 군자란과 반려동물이었던 강아지 은총이는 함께 가야 할 목록에 있었다.

이사하는 날 얼마나 매섭게 추운 날이었던지 밖에서 오랜 시간을 지체했던 군자란이 동해를 입고 잎이 축축 늘어져 있었다.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버리고 가라고 담장 옆에 버려둔 것을 고집을 부리고 데려왔다. 싱싱했던 푸른 잎들이 죽은 듯이 널부러져 있어서 싹둑 잘라내고 햇빛도 들지 않는 베란다 구석 자리에 두고 지냈다. 한해 봄이 지나도 회생의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나는 영영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주 물을 주면서 혼자 말을 걸었다. “그래 너도 편하게 안식년을 가지렴” 그 후 두 번째 봄에 뾰족뾰족 푸른 잎이 흙 밖으로 손을 내밀고 있었다. 경이로운 부활의 순간이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군자란을 보고 나에게도 묘한 삶의 생명력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단지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내가 그 군자란 화분을 버렸더라면 그냥 재활용도 안 되는 폐기물에 불과 했을거였다. 기다려준다는 것은 인내와 희망과 기대가 공존하는 것이며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좋음도 나쁨도 함께 공유한 시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다.

기사회생한 군자란에 대한 나의 애정은 각별했다. 연하디연한 새순이 혹여 꽃샘추위에 또 냉해를 입을까 걱정이 되어서 실내로 들여놓고 애지중지 키웠다. 따듯한 공기로 잎은 무성하게 쑥쑥 자라서 몸집은 커졌는데도 꽃을 피우지 않았다. 그 옛날 화려하고 우아하게 피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던 모습은 간데 없고 두해 봄을 지나는 동안에도 입을 꾹 다물고 침묵만 하고 있었다. 베란다 구석에서 죽은 듯이 보낸 2년과 기사회생 후에 2년을 그렇게 4년 동안 꽃은 피지 않았다. 그 내막을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실내에 들여놓고 과잉보호를 한 결과였다. 군자란은 추운 밖에서 겨울을 나야 봄에 꽃을 피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한해 겨울을 베란다에서 보내고 나서야 꽃을 피웠다. 온실 속에서만 자란 아이가 강하고 크게 성장하지 못하듯이 나의 사랑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었다. 봄이 그리 쉽게 오지 않듯이 한 송이 꽃도 그냥 피어나지 않는다. 우리 집 군자란처럼 죽음의 강도 건너고 혹한의 겨울 강을 건너면서 피어나는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