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칠흑의 어둠 속이다. 손에 힘을 주려 해도 옴짝달싹할 수 없다. 보이지는 않지만 잡힐 것 같은 커피잔, 갈증으로 입을 달싹거리자 향기가 코끝에 머문다. 다급하게 안방 문이 열어젖혀진다. 뒤따르는 발걸음도 날카롭다. 그제야 가까스로 몸이 움직여진다. 비몽사몽의 탁한 눈으로 남편과 아들을 올려본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남편이 생사를 확인하고 털썩 주저앉는다. 엉거주춤 서 있는 막둥이 얼굴도 벌겋다.

십 년 가까이 갱년기 장애로 수면의 질이 떨어졌었다. 감기까지 걸려 약을 챙겨 먹었다. 그런데도 새벽까지 좀처럼 기침이 가라앉지 않아 쌍화탕을 데워마셨다. 뒤척이다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때쯤 잠이 들었나 보다. 아침 내내 잠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나는 정오를 지나고 오후 한 시 삼분이 되어서야 가족들에 의해 겨우 깨워지게 되었다.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고 정신을 가다듬으려 커피를 미지근하게 타서 들이킨다. 기운을 차리려 아들과 점심을 먹고 침대에서 또 커피를 마신다. 남편은 몇 차례 안방과 거실을 오간다.

동료들은 점심시간이 시작되었는데 교대 자인 이 사람이 출근하지 않아 조금 늦나보다 했단다. 하지만 시간이 턱없이 지나자 걱정이 되어 누차 돌려가며 전화해도 받지 않았단다. 어쩔 수 없이 남편에게 연락을 넣었고 그는 일을 보다 말고 황급히 집으로 오게 되었다. 운전하는 내내 위험을 무릅쓰고 전화해도 받지 않았단다. 그도 그럴 것이 늦은 밤에는 편히 쉬려는 마음에 벨을 무음으로 해 놓는다. 그것을 알면서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고 한다. 얼마 전에 뉴스에서 보았던 일가족 살인사건까지 떠올라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단다. 얼마나 놀랐으면 점심밥도 못 먹고 물만 연거푸 마시며 다치지 않고 살아 있어 주어 고맙다고 한다.

커피 두 잔을 마시고서야 안개가 걷히고 머리가 맑아진다. 놀랐을 남편이 안쓰럽고 미안해지는 것을 보니 정신도 제자리로 돌아왔나 보다. 핑계 김에 하루 쉬라는 일터의 동료들이지만 여러 가지로 걱정되어 늦은 출근을 하게 되었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반색하며 접시 깨지는 소리로 쨍그랑거린다. 역시 여자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고독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다.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이해해주는 모습이 한없이 고맙다. 그다지 이타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온 나로서는 조금은 부끄럽고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좀처럼 잠이 들지 않는 밤은 책을 읽기도 하고 TV를 볼 때도 있다. 좋은 강연을 찾아 듣거나 읽기 어려운 책을 쉽게 요약해주는 영상을 본다. 그러나 밤을 새울 수는 없다. 잠을 자는 것은 하루를 매듭짓고 또 시작하는 일이다.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건강도 해치게 된다. 두통에 시달리며 멍하고 나른한 상태가 된다. 집중력이 떨어져 실수도 잦다. 그러니 밤에 잠들지 못하는 것은 형벌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고통스러운 일이다.

사람의 일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지 집안과 일터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여러 사람의 하루를 헝클렸다.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밤잠을 잘 자야 되겠지.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낮시간에 산책도 하고 좀 더 알차게 보내볼 계획이다. 동료들의 배려에도 푸근했지만 남편의 따뜻한 한마디가 뭉클하다. 살아 있어 주어 ‘고마워.’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