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려하던 일이 현실화 되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팽팽한 대립이 낳은 결과다.

이는 불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의대 증원 2000명을 두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기의 주장만 펼쳤던 까닭이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두고 벌어진 이번 사태는 그래서 양 측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오는 25일 이후 대학별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한다. 사직서를 내더라도 환자 진료에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5일 저녁 온라인 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의했다고 밝혔다. 참여한 의대는 건양대, 충남대, 충북대 등 충청권 대학을 포함해 20개교이다.

전국 의대 교수들의 집단사직을 결정은 가뜩이나 심각한 의료 대란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 더욱 큰 파장으로 다가온다. 전공의에 이어 교수마저 의료현장을 이탈하면 우리 의료 시스템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의료현장 혼란을 줄이기 위해 의료계와 소통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하지만 서로 정해 놓은 마지노선이 있는 한 진척될 상황은 없다.

사실 의료계는 그동안 집단이익이 걸릴 때마다 한 몸처럼 움직였다. 그때마다 정부는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의사 불패가 이어져 왔던 것인데, 이 것에 대한 학습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이번 사태엔 법정까지 가게 된 두 가지 쟁점이 있다.

의료계가 문제 삼는 건 의대 정원 증원을 2000명 규모로 결정한다는 복지부 장관의 발언과 뒤이어 나온 교육부의 후속 조치들이다. 고등교육법상 복지부 장관에게는 대학교 입학 정원을 결정할 권한이 없어 무효일 뿐 아니라 복지부 장관의 증원 결정을 통보받아 교육부 장관이 행한 후속조치 역시 당연히 무효란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소송 요건에 심각한 하자가 있으니 각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측은 또 의사 부족이 얼마나 큰 피해를 미칠 것인지와, 지금이 공공복리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 강조 한다.

ILO(국제노동기구) 가입 요청에도 시각 차가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 13일 집단사직에 대한 정부 업무개시 명령이 부당하다며 국제노동기구(ILO) 개입을 요청했다. 정부가 수련병원에는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전공의에게는 의료법에 따라 업무개시 명령을 내렸는데, 이 조치가 ILO 협약 제29호에 명시된 강제노동 금지조항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 “ILO 29호 협약은 국민 전체 또는 일부의 생존이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에 대해 예외를 적용하고 있다현재 국민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므로 협약 적용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판단한다는 입장이다.

의사들은 체력에 한계를 느낀다고 한다. 전공의 부재가 지속돼 온 까닭에 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임계치에 달한 것이다. 사태가 악화될 땐 떠날 수밖에 없다고도 한다.

정부의 일방적이고 비현실적인 의료정책 추진에 실망해 젊은 의사들이 병원을 떠났고, 의과대학 학생들은 교실을 떠났다고 강변한다.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병원을 떠나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볼모 삼는 것이며, 그들의 존재 이유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