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광장]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살쾡이 눈을 한 아이들/ 침을 꼴깍 삼키며 화면 속으로 빠져 들었다/ 독사보다도 징그러운 일본 순사가/ 유관순 누나에게 이것저것 캐묻다 느닷없이/ 누나의 머리채를 잡고/ 시커먼 물 통속으로 머리를 밀어 넣었다/ 가녀린 두 팔로 물통을 짚고 버티는 누나/ 창백한 얼굴에 빗방울 같은 땀방울이 맺히고/ 아이들의 조막만 한 손들이 바르르 떨었다/ 끝내 누나의 머리가 물속에 잠기며/ 물통 밖으로 물이 울컥울컥 넘치는 순간/ 아이들을 따라와 어둠속에서 숨죽이고 지켜보던/ 여치 방아깨비 풀무치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영사기 불길을 타고/ 도리우찌를 쓴 독사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마치 내가/ 윤봉길 의사라도 된 듯/ 내 도시락 폭탄을 독사를 향해 힘껏 내던졌다/ 뒤 이어 다른 아이들의 폭탄들도/ 획, 획,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스크린에 부딪쳐 바닥에 떨어지며/ 딸그락딸그락 폭발했다 순간/ 만세! 만세!/ 우렁찬 함성이 극장 안을 뒤 흔들었다/ 오래전 초등학교 3학년 때 본 유관순 영화/ 삼일절 아침/ 창밖에 내 걸려던 태극기를 힘차게 휘두른다. 최수일 시집 甘川 중에서.

시 쓰는 걸 좋아하던 산골 아이는 감히 노벨상의 꿈도 품어 보았다고 한다. 꽤 잘 쓴 시라 생각되어 담임선생님께 시 한 편을 보여 주었더니 선생님은 다짜고짜 어디서 베껴왔는지 다그쳤고, 그 뒤로 소년은 시인의 꿈을 접고 공학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 소년은 기업에서 정년을 하고 대학교수가 되었다. 퇴임 후, 어린 시절 겪었던 고향 이야기를 ‘감천(甘川)’이라는 시집에 엮어 내셨다. 지도교수님이 보내주신 시집을 읽다가 ‘도시락 폭탄’에서 페이지를 접었다. 열서너 살 소년들의 앙다문 입과 작은 주먹이 떠올랐다. 극장의 필름 영사기 빛 따라 뿌연 먼지가 떠다니고, 가난한 화면에는 빗금이 그어졌을 것이다. 그런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소년은 물이 울컥 넘치는 순간에, 화면으로 들어가 유관순 열사를 구해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허리에 찬 빈 도시락 보자기를 끌러 일본 순사에게 내 던졌단다. 뒤따라 쨍그랑쨍그랑 부딪치던 도시락. 그걸 던져 놓고 만세를 부르던 소년들은 이제 팔순을 바라보고 있다. 수업 시간에 이야기로 들었던 내용을 함축된 시어로 다시 만나니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3.1운동 105주년 아우내 봉화제에 참석했다. 2018년 뉴욕타임스에 실린 유관순 열사의 부고 기사를 읽고 뜨거워진 마음을 끌어안고 산다. 늦었지만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생긴 것이 필자의 인생행로에 가로등을 켠듯하다. 할 일이 있으니 몸에 생기가 돈다. 뉴욕에서 만난 유관순 열사의 후손과 손잡고 열사의 정신을 알리는 일에 인생 황혼기를 보내는 일은 기운차다.

아우내 봉화제는 JC청년회의소가 주관하기에 다른 행사에 비해 늠름한 젊은이들이 행사장 곳곳에 많아서 든든하다. 청년들 십여 명이 단상에 올라가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힘이 솟는 것을 느낀다. 그들도 독립선언문을 읽을 때마다 도시락을 던졌던 소년들처럼 울컥 치받치는 마음을 공감하지 않았을까?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기둥 역할을 하는 젊은이들이다. 그들이 행사를 진행하며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선열들을 기억하고, 그로인해 살아갈 날들을 애국열사의 뜻을 기리는 삶을 살아주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횃불을 켜자 언 볼이 녹는다. 군중 속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데 뜨거운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린다. 버선목에 태극기를 숨기고 꽃샘추위를 마다하지 않았을 유관순 열사가 그리운 삼월이다. 다시 횃불을 높이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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