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월이 다되도록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들과 집단 사직을 계획하고 있는 의사들로 의료 현장이 큰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윤 대통령의 이번 병원 방문은 지난 2월 의료개혁 대책 발표 이후 첫 방문이었다.

윤 대통령의 이날 행보에 관심이 쏠린 건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정부와 의료계 간 접점의 메시지를 내놓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접점없이 갈등만 키운 의료대란 한 달에 국민들은 지칠대로 지친 터였기 때문이었다.

윤 대통령이 이날 증원 수를 조정하지 않으면 대화에 응할 수 없다고 고수하지 마시고 앞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후배들을 설득해 달라며 의료계를 향해 채찍당근을 내놓았다.

의료계와 첨예한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는 의대 정원 2000에 대해선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고정 불변이라는 이야기다. 의대 정원을 단계적으로 증원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주장에 대한 답은 단계적으로 증원하기엔 (시기가)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다.

이미 그동안 증원 규모와 시기 등을 놓고 의료계와 대화를 계속해왔지만 의료계의 반대 등으로 시기를 여러 번 놓쳐 이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취지다.

대신 의료계가 진정성을 갖고 대화 테이블에 나서면 이를 설득하고 필요한 제도개선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정부도 이와 발맞춰 지난 18일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이른바 핀셋 보상을 하겠다며 보상체계 개편 방향을 공개했다. 기존 행위별 수가제도에서 앞으로 가치 기반 지불제도로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건강보험 재정에서 10조원 이상을 필수의료 분야에 투자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외과계 기피 분야와 내과계 중증질환 등에 대한 일조의 보상책인 셈이다.

이날 현장에서 의료진들도 전임의로 복귀 예정인 군의관에 대한 조기 복귀 허용 소아진료 분야의 인력난 해소 및 늘어나는 적자 구조에 대한 근본적 개선 필요성 소아외과에서 어린이 특성에 맞는 중증도 평가기준 마련 필요성 고위험 임산부 증가 등에 따른 고위험 분만수가 현실화 필요성 태아진료센터 지원 간호사 업무 범위의 제도적 명확화 등을 건의했다.

윤 대통령은 건의사항에 대한 신속한 이행을 약속하고, 의료개혁의 필요성과 개혁 완수를 위한 의료계의 협조도 당부했다.

그러나 현장 분위기와 달리 의료계 반응은 시큰둥했다. 의협은 수가 개편 요구를 무시하던 정부가 지금와서 왜 그렇게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전공의에 이어 의대 교수들도 집단 사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태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정부는 전공의처럼 동일하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불응 시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윤 대통령의 유화 제스처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듯하다. 근본적 문제인 의대 증원에서 실타래가 꼬였기 때문이다.

전국 16개 대학의 의대 교수들이 오는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는데, 사직서를 내고 나서도 진료는 계속 하겠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로, 당장 의료 대란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정부와 의료계는 서로를 겁박하는 극한 대립을 멈춰야 한다.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지 않으면 내 입장도 존중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국민들이 일련의 과정을 준엄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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