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이희영 배재대학교 기초교육부 교수

최근 의대 정원을 둘러싼 의료계와 정부의 대결은 말 그대로 강대 강의 대결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교육을 이수했다고 일컬어지는 두 집단이 부딪혀 누구 하나 타협할 생각 없이 오직 힘으로 상대를 이길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습을 가만 보고 있으면 괜히 내가 낯이 뜨겁다.

지난 20일, 정부의 의대 정원 대학별 배정 결과가 공식 발표되었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주장한 2000명의 인원에서 조금도 양보하지 않은 수치이다. 경기・인천 지역에는 361명이, 비수도권 지역에는 1639명이 증원되었다. 정부가 의대 정원 수치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의료계와 논란이 본격화 된 지 한 달여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후폭풍도 거세다. 전국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93%가 사직했고, 의대 재학생의 45% 이상이 유효 휴학하였다. 의대 교수들까지 제자가 없는 교수가 무슨 필요가 있겠냐며 집단 사직을 의결하고 행동을 앞두고 있다.

이런 의료계와 대면하여 정부는 조금의 타협도 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의 면허를 정지하고 처벌할 것이라 경고하며, 그것을 실제 행하고 있다. 이번 정부는 논쟁이 되는 정책에 대해 입장을 결정한 뒤 빠르고 강하게 밀어 붙이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고는 하는데, 의대 정원 역시 같은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일처리가 가능한 것은 의대정원 증원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지지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단견으로는 의대 정원을 둘러싼 해결 방법이 이뿐인가 하는 아쉬움도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질수록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위급한 상황에 놓인 환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약자에 놓인 이들부터 차례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의사들이 파업을 예고하며, 우리가 일하지 않으면 대학 병원이 도산하고 위급한 환자들이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협박 섞인 경고를 한다. 개인적으로는 병원에서 일하는 다른 노동자들은 그것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싶다. 의사가 사라진 자리 환자의 불안을 달래며 현장을 지키고 있는 간호사들과 혹여나 줄도산 이후 일자리를 잃게 될까 걱정하는 병원의 직원들은 이 현장을 어떻게 이해할까. 목소리 없는 자들은 그저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것 외에는 답이 없을 것이다.

전국의 대학들은 각고의 노력 속에 줄이고 있는 대학 정원이 2000명씩 급증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까. 교육부는 지난 수년간 대학의 정원 감소 정책을 펼쳐왔는데 정부의 정치적 의사 결정에 따라 전혀 다른 정책이 갑자기 시행된 것이다. 최상위권 학생부터 순차적으로 이탈할 것이 예상되는 내년이 어느 대학은 매우 걱정스러울 것이다.

이 상황이 조속히 마무리되길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이는 위급한 환자와 그 가족들일 것이다. 벌써 이러한 대결 상황으로 치료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환자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이 대결의 가장 큰 피해자가 그들이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정부와 의료계가 강대 강의 대결이 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약자가 아니어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입장이 아니라 국민들의 입장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약자들의 입장에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길 간곡히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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