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산책] 김법혜 스님·철학박사·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우리 고장의 전통시장에 가보니 피로에 절어 있던 몸이 스스로 되살아나는 듯 했다. 시장 안으로 들어서니 대형 찜기에서 수증기를 내뿜는 만둣집이 보이고 떡볶이 순대 닭강정도 시선을 끌었다. 없는 게 없는 시장의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됐다.

시장에 가면 숨어 있는 국밥 맛집도 있고, 배달 앱에서 자주 주문했던 불 족발집도 터를 잡고 있었다. 하루 장사를 마무리할 시간에 가면 그날 팔다 남은 떨이 메뉴들을 값싸게 살 수 있었다. 대형 마트의 규모와 편리함에 눌려 전통시장의 위기가 늘 거론되지만, 시장에서 느끼는 매력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대형 마트의 모습과는 다른 분위기다. 관광지로 변모하는 전통시장에는 외국인과 외지인들이 찾고 있어 항상 떠들썩하다. 하지만 신용카드를 아예 받지 않고 현금 결제만 종용하는 행태도 많아 불편함도 있다. 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판다고 입소문을 탄 물건도 많았다. 요즘처럼 물가가 올라서 과일 하나 사 먹기도 겁이 날 정도가 됐다. 하루 한 개면 의사가 필요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의 사과는 만인의 과일이다. 그런데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고 있다. 말 그대로 ‘금(金)사과’가 됐다.

사과(후지) 10㎏당 도매가격은 9만1700원으로 1년 전(4만1060원)보다 123.3% 뛰었다. 마트나 시장에선 사과 하나가 3000~4000원이고 크고 좋은 것은 한 개에 1만여 원이나 된다. 지난해 이상기후로 작황이 나빠진 게 가격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이다.

생산량은 30% 이상 줄었고, 현재 저장량도 가격을 안정시킬 수준이 안된다. 햇사과는 7월이나 돼야 나오기에 수입 말고는 가격하락의 해법은 없다. 수입 논의는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과학적 검역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 해외 병해충이 들어올 수 있다며 그동안 사실상 수입이 금지된 상태다. 사과는 이제 ‘공공의 적’이 됐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지난해 추석부터 지급한 보조금을 사과와 사과 대체재인 귤·배가 싹쓸이하면서 과일 가격은 물론, 전체 물가지수를 불안하게 했다.

이상기후가 잦아지고 있는 만큼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국내산 사과 구경하기가 힘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시장을 돌아다닐 때마다 하루가 멀다고 치솟는 물가가 실감이 난다. 지갑 열기가 부담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시장에서 만나는 주변 풍경은 언제나 편안하고,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어 좋다. 맛집들까지 열심히 탐방하고 나면 가성비뿐만 아니라 심리적 만족감까지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물가관리를 책임진 정부의 정책에 호응하는 형식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유통 업체들까지 현재의 고물가 현상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

유통 업체들은 산지 직송 전 확대, 산지 대량 매입-대폭 할인 행사 연계로 체감 물가를 낮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 고물가 잡기 대상은 최근 물가 급등의 주요인으로 꼽히는 과일과 식재료에 집중되고 있다. 국민들이 일상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직접적으로 고물가 현상을 실감하는 대상이 과일과 채소 등이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총력적으로 임하고 있는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조금 더 현장과의 정책 협업을 세밀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시장을 체험하는 것 자체가 2030세대에게 새롭고 아주 멋진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의미다. 그만큼 전통시장을 찾는 젊은층이 늘어나고 있는데 유명한 것보다는 시장 고유의 역할을 잘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 한반도의 온난화에 따른 재배 여건 변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도 정부는 여태껏 이런 문제를 사실상 방관해 온 것은 행정 소홀이다.

대체 가능한 수입품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나 검역 문제의 해결이 우선되어야 한다. 정부는 검역 간소화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를 보면 금사과는 농업정책·물가관리 실패가 낳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가를 잡으라"는 말이 이래서 나오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뭘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미봉책이 아닌 좀 더 효율적이고 장기적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민생을 제대로 챙기는 일이다. 잠깐의 유명세는 수명이 짧지만, 시장은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 곁에서 오랫동안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농산물을 중심으로 한 특단의 조치를 즉각 실행하라”고 지시했다. 또 "긴급 농축산물 가격안정자금 1500억 원의 즉각 투입이 필요한 경우에는 지원 규모를 확대하겠다"라는 약속도 해 기대를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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