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신 어르신들에겐 외람되지만, 나도 세상을 좀 살았구나 싶다.

어린 시절, 허연 수염을 쓰다듬으며 어험, 헛기침하는 노인분들의 나이는 대체로 예순을 넘기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 시절, 동네 노인분들 중에 장수하시는 분들을 가리키며 사람들은 그런 말을 했다.

저 양반은 벌써 환갑 진갑 다 지냈어.”

그런데 어느덧 내가 내년이면 환갑(還甲)이고, 후년이면 진갑(進甲)이다. 참 세월이 빠르다. 올해 나이 이순(耳順)인데, 나는 듣는 대로 이해 할 수 있게 된 나이일까.

 

그 사람, 명절 때 갈 곳이 없잖아

며칠 전 큰누나의 칠순 잔치가 있었다.

요새 무슨 칠순을 챙기느냐, “일흔은 나이도 아니다며 한사코 손을 내젓던 큰누나였는데, 조카 녀석이 기어코 가족들이 모아 축하하는 조촐한 자리를 만들었다.

70세를 고희(古稀), 종심(從心)이라고 한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곡강(曲江)에서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했다. 인간의 삶에서 칠십까지 산다는 건 예로부터 드문 일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일흔을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 했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큰누나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모습이라기 보다는, ‘법도를 넘어서는 여유로운 모습이지 싶다.

전 남편의 새 여자를 살뜰하게 챙겨주는 모습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돌부처도 돌아누울 판에, 막내아들 식당에 그녀를 취직시켜 줘 살길을 열어주는 그 마음을, 옹색한 마음을 가진 범인(凡人)들은 어떻게 헤아릴지.

명절 때만 되면 자신의 집으로 그녀를 불러들여 음식을 차려주고 살가운 말로 위로해 주는 큰누나의 심성은 무엇에서 기인한 것일까. 그런데 쉬운 대답을 한다.

그 사람이 언니 언니, 하며 나를 잘 따라. 그보다 그 사람, 명절 때 갈 곳이 없잖아.”

그런 심성을 닮아서일까, 이제 오십줄 바라보는 큰누나의 아이들도 새엄마, 새엄마하면서 아버지의 새 여자를 잘 섬긴다.

 

5리길을 뒤쫓아 건네주던 점퍼

1976년 초등학교 5학년 말, 반에서 2등을 했다. 선친께 성적표를 드리니 고생했다한마디였다. 그런데 난 사족을 붙이고 말았다.

원래는 1등인데, 선생님 잘못으로 2등이 됐다고 했다. 1등을 한 아이와 성적을 비교해보니 총점에선 내가 앞섰는데, 선생님이 평균을 잘못 내는 바람에 2등이 됐다고.

선친께선 불같이 화를 내셨다. 성적이 높고 낮음은 중요하지 않지만, 잘못된 일이 있으면 그 일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버젓이 잘못된 성적표를 가지고 왔냐며, 당장 고쳐오라고 그길로 내쫓았다. 밖은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데, 거의 내복 바람에 쫓겨난 처지. 오돌오돌 떨며 5리길을 걸어 읍내로 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큰누나였다.

큰누나는 내게 설빔으로 숨겨 두었던 점퍼를 건네기 위해 5리길을 허겁지겁 뒤따라 왔던 것이다.

아이구, 아버지두 너무 하셔. , 눈보라가 이렇게 치는데 내복차림으로 앨 쫓아내다니.”

중학교를 졸업하고 수원에서 7년째 직장생활을 하던 큰누나 그때 나이는 스물 둘이었다.

그 마음씨 고왔던 아가씨가 이제 칠순이다.

세월은 시위를 떠난 살처럼 빠르게 흐르고, 우리는 세월의 편린에서 찾아낸 추억을 되새기며 한마디 웅얼거린다.

나는 내 삶을 잘 살아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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