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으로 치닫고 있던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 조정과 봉합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서로의 잘 잘못을 떠나 이 같은 시도 자체는 유의미한 일이다.

변화의 조짐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부터 나왔다.

한 위원장은 지난 24일 오후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를 만난 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의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유연하게 처리해 달라고 대통령실에 요청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에 화답하면서 당과 협의해 유연한 처리 방안을 모색해 달라. 의료인과 건설적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를 추진해 달라고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지시했다.

강경일변도로 완강하게 나아갔던 윤 대통령의 태도 변화는 의료계의 비상한 움직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날은 전국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일인 25일을 하루 앞둔 시점이었고, 26일부터는 면허 정지 처분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매우 민감한 시기였던 것이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를 두고 돌아올 수 있는 다리를 끊어버렸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의료계와 일말의 협상 진전을 이루지 못한다면 파국으로 갈 수도 있다는 의기의식이 팽배할 수밖에 없었다.

총선 정국과도 맞물려 있다. 윤 대통령의 의대 증원 방침이 처음엔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여러 지표가 증원의 필요성을 가리키기도 했다.

그러나 의료 공백 장기화는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가져다 줬다. 더욱이 진료를 받지 못해 애태우는 환자와 가족들은 주도면밀한 대응책 마련도 없이 밀어붙인 정부의 정책에 회의감을 갖기 시작했다. 우군으로 여겨졌던 의사들은 대정부 투쟁으로 노선을 선회했다. 이 같은 현상들은 모두 여당에게 악재로 작용했다.

한 위원장이 중재를 자청하며 등판한 것은 그런 까닭에 고육책이다. 일단 전공의 면허 정지 처분으로 인한 파국을 막고 의사 단체와 대화에 나서 접점을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양 측의 첨예한 입장 차는 앞길을 어둡게 하고 있다. 쉽게 봉합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탓에 극적인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첩첩산중이다.

기본적으로 양 측이 주장하는 핵심 요소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접점을 찾기엔 이견의 폭이 너무 넓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2000명 증원을 못박았고, 의료계는 이 사안부터 철회하라는 전제조건을 달고 시작되는 협의이기 때문이다.

다만 의료계는 그동안 법과 원칙을 앞세우던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전공의 면허 정지 처분에 대해 유연한 처리를 당부한 것을 두고 의정 대화의 물꼬가 트일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당장 의대 교수 집단 사직 행동은 막을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핵심 요소인 의대 정원 2000재논의가 없다면 전공의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요구에서 한 걸음도 더 진전된 게 없다는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군이었던 의료계의 대정부 투쟁 선언은 국민의힘에겐 총선 앞 돌발 악재다. 국민들의 냉랭해진 시선도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국민들은 지지부진하면서도 매우 위태로운 현 상황에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 정부에 대한 믿음이 점점 옅어져 가고 있다.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서로의 신뢰부터 쌓은 뒤 한 발씩 물러서는 여지를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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