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황혜영 서원대학교 교수·교양학부

&amp;amp;amp;amp;lt;내 영혼의 빛, 카발라&amp;amp;amp;amp;gt;라는 유대교 신비주의 전통에 관한 책에 따르면, 세계는 우리가 속한 물리적인 1%의 영역과 99%의 영적인 빛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1%의 영역에서 인간이 외부의 자극에 충동적으로 반응하여 행위의 결과, 객체가 된다. 하지만 인간의 운명은 본능적 반응성에 저항하여 스스로의 원인과 주체가 돼 빛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반응성 행위는 순간적인 번쩍임을 만들지만 결국 어둠을 남긴다. 반면, 전구의 필라멘트가 양극에서 음극으로 흐르는 전류에 저항해 지속적인 불빛을 만드는 것과 같이, 외부의 자극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멈출 때 역설적으로 우리의 능동성이 발휘되고 99%의 지속적인 빛의 영역에 닿게 된다.

이 책의 저자 예후다 베르그는 카발라의 원리를 확인해보도록 영화 &amp;amp;amp;amp;lt;그라운드호그 데이(국내에선 &amp;amp;amp;amp;lt;사랑의 블랙홀&amp;amp;amp;amp;gt;이라는 제목으로 개봉)&amp;amp;amp;amp;gt;를 추천한다. 미국 펜실베니아 주의 펑츄토니 마을의 '그라운드호그데이(성촉일)' 축제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매년 2월 2일, 이 마을 사람들은 다람쥣과의 마못 한 마리를 펑츄토니 필로 정해 봄이 오는 시기를 묻는다. 만일 마못이 겨울잠에서 깨어 나오다가 자기 그림자를 봤다고 하면 겨울이 6주나 더 지속되고, 아니면 4주 후면 봄이 온다는 것이다.

주인공 필 코너스는 기상캐스터로 마못의 일기예보를 취재하러 펑츄토니에 왔다가 폭설로 마을에 하루 더 머물게 되는데, 이튿날부터 그에게는 전날의 일이 그대로 반복되는 마술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다시 그 전날로 되돌아가자 그는 여자도 유혹하고, 돈 가방도 훔치는 등 충동에 따라 마음대로 행동한다. 그러나 제멋대로 하는 것에도 싫증나고,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좌절한 그는 온갖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하지만 다음날 6시면 또다시 운명의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뜬다.

죽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필 코너스는 바꿀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기 스스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처지를 고민하는 대신 같은 날이 반복되는 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기억해 두었다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준다.

음산한 겨울이 평생 계속되도록 저주하던 그는 겨울도 생명 순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삶의 가치를 찾아간다. 그의 선행을 받은 사람들은 그가 매일 그 일들을 반복해왔음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모두들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그가 사랑해온 동료 리타도 그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다.

결국 축제를 마치고 두 사람이 함께 보낸 다음날 아침, 드디어 놀라운 변화가 온다. '오늘'이 '내일'이 된 것이다.

카발라에 따르면 같은 날이 반복되는 외부의 상황에 코너스가 충동적으로 반응할 때 그는 그 상황에 지배당하는 행위의 결과일 뿐이었지만, 비록 오늘 한 모든 일들이 내일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될지라도 그 상황에 저항하며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순간 그는 99%의 영적인 빛의 세계에 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똑같은 날이 매일 반복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상황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며 자신만을 생각하던 필에게 리타가 인용한 월터 스콧의 시 &amp;amp;amp;amp;quot;자기 안에만 몰두하는 가엾은 그대여, 사는 동안에는 손가락질을 받고 죽어서는 그대가 태어난 곳, 더러운 먼저로 되돌아갈지니 그대를 위해 슬퍼하는 자, 노래하는 자 하나 없도다.&amp;amp;amp;amp;quot;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비록 내일이 오면 오늘 하루가 아무 흔적 없이 사라진다 해도, 오늘 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나누어주던 변화된 필처럼 반응성 충동에 저항하는 삶의 주체가 될 것인가? 영화를 보며 반응성 충동을 극복하리라 다짐해본다.

황혜영 서원대학교 교수&amp;amp;amp;amp;middot;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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