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전 최전방 GOP부대 근무당시 구호는 초전박살이었다. 초전박살(初戰搏殺), 뜻 그대로 전쟁이 일어나면 초반에 박살을 낸다는 말이다. 누구를? 북한군을 말이다. 지금은 과격하게 비칠지 모르지만 당시의 시대상황적 분위기는 이를 충분히 수용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냉전 이데올로기 차원을 떠나 당장 내 눈 앞에 적의 총부리가 우리를 겨누고 있는 마당에 투철한 정신무장은 군안들에게는 아무리 요구해도 지나치지 않는 덕목이었다. 간단없는 정훈교육을 통해 오로지 멸공(滅共)의 기치아래 현진지가 내 위치라며 불굴의 전의를 불태웠던 시절이 바로 그때였다. 세월이 흘러 이념을 달리한 통수권자의 등장으로지금은 초전박살 구호를 듣기 어려운 것 같고 충성이라는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 같다. 충성(忠誠)역시 좋은 말이다. 군인은 무엇보다 국가와 민족에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함축이다.그러나 충성의 무게는 초전박살의 결연함에는 크게 못 미치는 게 사실이다.


-잇단 군 간부들의 일탈 답답


또 하나 과거 빠따를 맞으며 외웠던 군인의 길도 반추해 보자. 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군인이다라는 전문 아래 하나, 나의 길은 충성에 있다 조국에 몸과 마음을 바친다. 하나, 나의 길은 승리에하나, 나의 길은 통일에 하나, 나의 길은 군율에 , 하나 ,나의 길은 단결에등의 군인의 좌우명 인 동시에스스로 내가 군인임을 각인하는 주문(呪文)이나 마찬가지 였다.

이 중 나의 길은 군율에 있다 엄숙히 예절과 책임을 다한다. 나의 길은 단결에 있다 지휘관을 핵심으로 생사를 같이한다라는 구절은 아무리 군대가 달라졌다 해도 에전이나 지금이나 군복을 입은 이상 특히 머리와 가슴에 새게고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꼬박 3년 넘나드는 세월을 창살없는 감옥에서, 어느 전직 대통령 말 마따나 썩다온 예비역들의 눈에 2년도 안되는 복무기간이 길다 하며 더 줄이자고 하는 논란이 어이없는 일일지 모르지만 요즘 신세대의 입장에서 보면 그 기간도 환장할 노릇이다. 그러면서 나약하고 나밖에 모르는 풍조가 대세인 사회 환경에 길들여진 젊은이들이 통제받고 자의가 존중받지 못하는 특수환경 집단인 군대에서 무리없이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많이 하지만 그것은 기우인 것 같다.

생면부지의 군상들이 몰려 동기가 되고 선후배가 되는 군의 서열문화가일련의 사건사고로 인해 폐해로 지목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상명하복의 절대성 아래 일사분란이 생명인 조직이 느슨해지고 당나라군대 같다는 시정의 비꼼은 분명 큰 틀에서 군대를 들여다 볼 필요성을 요구한다.


-국방개혁 사병들보다 솔선을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사병들의 일탈 못지 않은 간부들의 반 국가적 행위의 적나라함은 군의 사기저하와 불신을 초래하게 된다.동시에 지휘력의 상실과 군 기강 확립 대한 권위 상실 등으로 전력약화의 중대한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인물이 군사기밀을 팔아먹지 않나, 툭하면 터지는 방위산업을 둘러싼 비리, 좌경화 의식을 가진 장교들의 횡행은 이 같은 우려를 더 깊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성추행이나 심지어 절도 등의 범죄는 국제신사라는 장교 집단에 커다란 불명예를 안겨주고 있다. 그 어디보다 엄정하고 투명하고 믿음을 줘야할 군의 세계가 일반보다 더 구린내를 풍기고 좌 클릭의 틈새가 생기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종전이 아닌 휴전과 정전(停戰)상태로 적과 대치하고 있는 분단국가 대한민국 군인의 길 에는 사리사욕과 반사회적행동, 종북의 틈새가 생겨서는 안된다. 작금의 병영문화 개선은 사병들만의 국한이 아니라 간부들도 철저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국가관과 정체성의 확립을 위해서도 동일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부하들로부터 믿음과 존경을 받지 못하는 지휘관은 존재의 가치가 없다. 수신(修身)도 못하면서 제병(齊兵)을 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용장밑에 약졸 없다고 하지만 비겁하고 정도를 걷지 않는 장수 밑에서 충성을 발현하는 병사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군 지휘부는 지금 추진하는 국방개혁을 선진 일류군대의 초석다지기라고 강조한다. 선진강군은 사병들만의 과제가 아니라 간부들이 선도해야 한다. 사회적 지탄을 받는 군 간부들의 일탈을 더 이상 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정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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