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퇴직자들이 갈곳이 없다. 새로운 직장을 얻기도 힘들고 자영업도 치열한 경쟁 때문에 쉽게 뛰어들지 못한다. 이 때문에 청주 우암산에는 50대에 명퇴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딱히 할 일이 없으니 등산이라도 하는 것이다.

55세 명퇴한 K씨, 아침을 먹으면 의례 운동화 끈을 맨다. 물론 산에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때우는 경우는 다행이다. 대부분 묵묵히 산에 올라 정상에서 심호흡을 한번 하고 다시 내려온다. 점심을 먹으면 또 무엇을 해야 하나. 딱히 할 것이 없으니 다시 산을 찾는다. 이처럼 K씨 처럼 하루 두 번씩 산에 오르는 사람이 꽤나 된다는 것이 산을 찾는 사람들의 말이다.

명예 퇴직자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봉급이 적더라도 새로운 직장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적성에 맞는 자리를 구하기도 힘들고 경비 자리도 치열하여 누구나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직을 퇴직한 사람의 경우 그나마 공무원 연금이 있어 걱정은 덜하지만 회사를 그만둔 사람의 경우 쥐꼬리 국민연금을 바라봐야 하기 때문에 더욱 난감하다. 노후 대책 없이 퇴직한 사람들은 몇푼 안되는 퇴직금을 곳감 빼먹듯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K씨는 중소기업에서 주로 경리 업무를 봤다. 한때는 잘나가는 회사에서 스카웃 제의도 있을 정도로 맡은 업무에 충실했다. 그러나 회사가 점점 어려워 지고 나이도 그렇고 명퇴할 수 밖에 없었다. 퇴직후 여러 회사에 일자리를 알아 봤지만 쉽지가 않았다.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경비라도 해보려고 이력서를 냈으나 모두 허사였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자영업을 생각했다. 전에 잘가던 식당을 떠올리며 한식집, 칼국수집 등을 준비했다. 그러나 주위에서 한결같이 말리는 것이다. 아내도 식당을 시작하면 집을 나간다고 말했다. 자영업을 하다가 퇴직금만 날렸다는 사람들이 많아 걱정은 되었다.

식당할 가게를 보러 다니기도 했다. 장사가 될만한 곳은 세가 너무 비싸고 싼 집은 대개 장사를 하다가 망한 곳이다. 우리나라 창업 시장은 10명 중에 8명이 문을 닫을 지경이라고 하니 자영업의 어려움은 눈에 보듯 뻔하다. 아직도 자영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시작은 못하고 있다.

K씨는 곧 27살 딸을 결혼시킬 예정이다. 양가에서 내년 가을쯤에 결혼시키기로 약속을 했다. 혼수 비용으로 4~5000만원은 든다고 하는데 결국 퇴직금에서 헐어 혼수를 마련해줘야 할 판이다. 딸이 결혼하면 25살 아들도 곧 결혼시기가 다가올 것이다. 딸보다 아들이 더 걱정이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의 경우 아파트 전세만 하더라도 2억원은 있어야 한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젊은 시절 밤낮을 가리지 않고 회사를 위해 일했지만 퇴직하고 나니 자신이 너무 초라한 생각이 든다는 것이 K씨의 말이다. 한때 공무원이 되려고 했으나 그 당시는 공무원 봉급이 너무 적어 포기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공직에 있었다면 말련에 공무원 연금으로 생활에 쪼들리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후회가 된다고 말한다.

45세인 남성은 앞으로 79세, 여성은 85.2세까지 더 살 수 있다고 한다. 해마다 기대 수명이 늘어나고 있다. 수명은 늘어나고 수입은 줄어들고 퇴직자들의 앞날이 그래서 더 어둡다.

정부는 노후 대책이 제대로 되지 않은 퇴직자들을 위해 일자리 창출에 나서야 한다. 젊은 시절에 했던 기술을 더 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 아닌가. K씨는 요즘 살맛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조무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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