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하다.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은 어떤 일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들도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상식에 해당한다. 하지만 상식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고정관념이다. 고정관념은 상식과 달리 부정적인 의미이다.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우리는 "고정관념을 버려야지."라고 말하곤 한다. 상식적으로 행동했으나, 예상외의 결과를 얻게 되었을 때 하는 말이다.

상식과 같은 의미에서 고정관념은 그리 나쁜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고정관념만으로 세상을 산다면, 세상은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실패를 허용한다면, 사람들은 고정관념을 벗어난 행동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가끔은 매우 창의적인 행동이 나올 것이고, 그것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기회를 만들어줄 것이다. 그래서 창의성은 진화와 유사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진화가 일어나려면 반드시 부모와 다른 돌연변이가 탄생해야 한다. 부모와 닮은 자손만 있다면 진화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는다.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극히 일부의 돌연변이만이 부모보다 환경에 더 잘 적응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진화가 일어나게 된다.

과학자들이 창의적인 생각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창의적인 생각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사라지지만, 극히 일부의 생각은 과학에 큰 변화를 일으킨다. 아인슈타인은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나 정지해 있는 사람이나 빛의 속도는 항상 일정하다는 결론을 얻었을 때, 자신의 상식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상식에 의하면, 빛과 같은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 보는 빛의 속도는 정지해 있는 사람이 보는 빛의 속도보다 느려야 한다. 서 있는 사람이 달리는 자동차를 볼 때의 속도와, 달리는 기차에서 같은 방향으로 가는 자동차를 볼 때의 속도는 달라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상식을 버렸다. 그가 버린 것은, 움직이는 사람과 정지해 있는 사람에게 모두 시간의 흐름이 같다는 상식이었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언제쯤 도착하는지 묻곤 한다. 이렇게 묻는 이유는, 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의 시간과 집에서 가만히 있는 사람의 시간이 같은 속도로 흐른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식은 어긋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빛 속도로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경우에는 그러한 상식이 맞지 않는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경우에 시간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흐른다. 그래서 쌍둥이 중 한 명이 로켓을 타고 빠르게 우주로 날아갔다가 돌아오면, 지구에 남아 있던 다른 쌍둥이는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온 쌍둥이보다 늙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시간뿐 아니라 공간에 대한 상식도 버렸다. 평행한 두 선은 서로 만나지 않는다는 상식은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만들었다. 그러나 거대한 중력이 존재한다면 공간이 휘어지기 때문에 평행한 두 선이 만날 수도 있다. 아인슈타인의 이러한 생각은 일식 때 항성을 관찰함으로써 증명되었다. 항성은 항상 같은 자리에 있는 별인데, 일식에 의해 낮에 관찰한 그 항성의 위치가 변한다면, 이는 항성에서 오는 빛이 거대한 태양의 중력에 의해 휘어졌기 때문이다. 빛은 직진하므로 결국 공간이 휘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상식은 매우 견고하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은 상대적으로 매우 창의적인 사고였다. 그가 깬 상식은 오늘날 큰 과학적 발전을 이끌었다.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시도를 할 때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회가 된다면 창의적인 사고는 계속 일어날 것이다. 요즈음 교육계의 화두는 창의적 인재 육성이다. 새해에는 우리도 한번쯤 상식을 깨는 사고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도해 보면 어떨까? 비록 실패할 것이 예상된다 해도 말이다.



/백성혜(한국교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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