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발견한 최고의 깨달음은, 인간은 자신의 태도를 바꿈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하버드대학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말이다.

집에서 사무실까지의 거리가 애매하여 자동차의 히터를 틀지 않는다. 운이 좋아 막힘없이 달리면 10분 이내의 거리다. 하지만 매번 빨간 신호등에 걸린다 해도 문제될 건 없다. 코트를 입은 채로 운전하면 그만이니까. 히터를 틀지 않는다는 말에 '고현정 피부관리' 하냐고 묻는다. 그렇거나 말거나.

아파트에서는 두꺼운 양발을 신고, 내복에 점퍼를 입는다. 실내온도 15도. 또는 그 이하. 그래도 아랫목 같은 돌침대에 몸을 뉘면 저절로 "좋아, 좋아' 탄성이 인다. 맨살처럼 매끄러운 도자기를 끌어안듯, 솜이불 속에서 따뜻하게 익은 대리석 판으로 몸을 붙인다. 차가운 아랫배가 스르르 풀어진다. 몸 안의 지방이 모두 녹아내릴 것 같은 상상으로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는 기분이다. 보일러를 켜지 않은 차가운 아파트 공기는 머리를 차게 해주고 따뜻한 돌침대는 종일 지친 몸을 끌어안아 보듬어 준다.

반신욕, 족욕 등으로 한때 열풍이 불었던 건강관리 '두한족열' 이다. 머리는 차게 하고 발은 따듯하게 해야 혈액순환이 잘되어서 건강해진다고 한다. 머리는 아무리 차게 해도 병에 걸리지 않으며 배는 아무리 따뜻하게 해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어깨를 우그리고 다닐 만큼 추운 아파트에서 단지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에너지를 절약해야만 한다는 것보다 피부 관리 한다고 생각하는 게 훨씬 행복하다.

1946년 미국의 하버드대학 학생들이 자신이 겪은 어려움에 관한 글을 작성했다. 그리고 학자들이 그 글을 분석하여 학생들이 자신의 고난을 어떤 관점으로 설명했는지를 조사한 후 5년 간격으로 그들의 건강 상태를 기록했다. 그 결과 대학시절에 자신의 어려움을 부정적인 관점에서 설명한 학생들은 중년기부터 질병에 시달리기 시작 했지만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관점에서 설명했던 학생들은 노년기까지도 활동적이고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음을 관찰 했다고 한다. 차가운 물과 따뜻한 물이 나오는 두 개의 수도꼭지처럼 우리 마음의 수도꼭지에도 한쪽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이 나오고 다른 한쪽에서는 긍정적인 감정이 흘러나온다. 차가운 물이 나오는 꼭지를 잠근다고 해서 따듯한 물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따뜻한 물이 나오는 꼭지를 열어야 따듯한 물이 나오는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내게 주어진 상황을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스스로를 행복하게 해 준다. 32평 아파트에서 다섯 식구가 법석대며 살다가 이제는 주중에 혼자 지낸다. 혼자 지낼 때나 여럿이 지낼 때나 똑 같은 난방비를 내는 게 아무래도 불합리해서 시작한 '이글루아파트'로 나는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많은 돈이 절약 되지는 않지만 마음 편한 걸로 하면 그 이상이다.

난방비 때문에 걱정을 호소한 교육생이 있었다. 기초수급자로 받는 한 달 생활비의 40%가 난방비로 지출되다보니 삶의 의욕이 저하 되어 잔뜩 움츠러져 있었고 기름 값에 대한 불평도 많았다. 춥게 지내고 있는데도 구멍 뚫린 듯이 기름이 새어나가다 보니 한겨울 동안 피난이라도 갈 곳이 있으면 좋겠다며 울상을 짓는다. 돌아가신 남편의 병원비로 집까지 팔고 허름한 셋방에서 예상치 못한 난방비를 내다보니 아이들과 살아갈 일이 막막하다는 것이다. 한 겨울을 날 일이 걱정이라는 그녀에게 커튼을 치고 테이프로 문틈을 막고 방의 난방을 차단하고 보일러가 가까운 부엌 쪽에서 잠을 자는 게 어떠냐는 말을 하면서도 가슴이 시렸다. 초등학교 다니는 그녀의 막내가 추위를 이겨낼 지 마음에 걸렸다. 헌혈증서처럼, 내가 아낀 전기를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 나누어 주었으면 좋겠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아름다운 밤이다.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골목길에서 그녀와 그녀의 남매가 눈송이를 뭉치며 깔깔 웃는 상상을 한다. 그래도 한 달이 지나면 기초수급자에게 주는 생활비가 어김없이 나오지 않는가. 그녀가 따뜻한 수도꼭지를 틀어 아이들을 덥혀 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마냥 행복한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길.



/유인순 한국문인협회 천안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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