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녘의 태양이 불끈 솟았다. 새해가 밝았어도 작금의 국내외 정세는 한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카오스 현상의 극치이다. 유럽의 경제상황이 불투명하고 미국과 중국의 패권(覇權) 경쟁이 심상치 않다.

국내에서도 정치라는 최고의 국태민안(國泰民安)은 여의도 1번지에서조차 찾아 볼 수 없다.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국민을 걱정해야 할 그들을 오히려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는 판이다.

어느 때보다 집단 이기주의 현상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따갑다. 네가 있음으로 내가 있다는 더불어 살아감의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가 없다. 네가 없어야 내가 있다는 기막힌 현실을 언론 보도를 통해 늘 접해야 하니 마음이 아프다.

오늘 이 나라는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에 의해 극심하게 분열돼 있다. 이러한 분열을 치유해야 우리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포철을 세운 박태준 회장이 돌아가셨다. 그가 열정을 쏟았던 60,70년대는 참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그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도약 프로젝트와 리더십이 기억에 새롭다. 또한 국민 모두가 잘살아 보겠다는 의지와 근면?성실을 최고도로 발휘한 시기이기도 하다. 경제를 주도했던 인물들의 애국적인 기업가 정신이 새삼 고귀하게 느껴진다.

정주영 회장은 "나의 관심사는 이 나라를 영광스러운 국가, 자랑스러운 민족으로어떻게 기여하는가에 있다"며 "기업 이익이 국가 이익에 우선한다는 생각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은 대성할 수 있다"고 했다.

이병철 회장은 "사업보국(事業保國)"이라는 신념으로 일생을 지낸 분이다. 그는 이 나라 전자산업을 위해 일본인들에게 수모를 겪으면서 선진기술 도입에 평생을 바쳤다. 김우중 회장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며 비행기에서 쪽잠을 자며 세계 구석구석을 누볐다.

박태준 회장은 유서에 "임직원들이 항상 애국심을 갖고 일해 주기 바란다"고 썼다. 그러면서 자신은 포철 주식을 단 한주도 갖지 않았다. 선조들의 피 흘린 값의 대가인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만든 회사인데 누가 무슨 자격으로 그럴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정신이 바로 '제철보국(製鐵保國)'이고 애국주의였다.

울산의 현대중공업에 가 보면 조선소 건물 벽에 큰 글씨로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되는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철의 사나이'가 마지막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 시대 얼마 남지 않은 또 한 명의 훌륭한 리더가 사라졌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공허해진다.

요즈음은 정치, 경제적으로 기대고 따를 만한 리더가 거의 없어 더욱 고인의 리더십이 그리워진다. 이공계의 독보적인 박태준 회장이 보여준 '비전의 리더십'이야말로 애국적 리더십이다. 그는 수많은 포스코인은 물론 이 땅에 사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모래바람 부는 경북 포항의 영일만에서 '우향우 정신'을 외치고, 대충 넘어 가려는 부하 직원의 조인트를 까고, 지휘봉으로 가슴을 밀었지만 산업 1세대들은 결국 그의 말을 따랐다. '산업의 쌀'인 철을 만들어 내는 제철소를 지어 놓으면 후손들이 배불리 먹고 잘살 수 있는 조국 근대화의 기반이 마련된다는 꿈을 함께 공유했기 때문이다.

고인은 "세계 최강의 포스코를 만들어 달라"는 마지막 유언으로 그의 비전을 영원한 현재 진행형으로 남겼다. 그의 리더십은 또 다른 원동력인 '청렴'이다. 박태준 회장은 본인 명의 차는 물론 집 한 칸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처럼 고위층의 권력형 비리로 많은 사람의 이름이 회자되고, 검찰, 법원 청사를 안방 드나들 듯 하는 세태와 비교해 보면 그분이 참으로 위대해 보인다.

또한 박태준 회장은박정희 전 대통령의 특별 하사금을 받아 구입한 서울 아현동 자택을 2000년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당시 10억 원에 팔아 사회에 환원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현재 리더십의 부재에 시달리고 있다. 이념 갈등에 소통마저 단절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만 남기며 점점 멀어지고 있다. 도무지 고마운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의 상황을 카오스라고 표현하고 사람 살맛나지 않는다고 너나없이 시름에 젖어 있다. 선혈들이 피 흘려 세운 이 나라를 지키는 일은 어떤 이념보다 중요한 애국심이 아닐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한반도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게다가 총선과 대선까지 국운을 좌우할 중대사가 예정돼 있다.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더 앞으로 나아 갈수도, 뒤로 떨어질 수도 있다.

필리핀이나 아르헨티나가 우리나라보다 더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였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나라가 되었다. 바로 리더들이 나라를 생각하기보다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고 잘못된 리더십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나라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몸소 깨닫기 때문이다. 진정 나라를 걱정하던 고인들 같은 리더가 더욱 그립다.




/정관영 공학박사, 충청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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