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갱년기에 이를 때 가장 두드러지는 육체적 현상으로 폐경을 손꼽는다. 하나 여성의 생리가 멈추는 것을 폐경이라고 불리는 게 나는 왠지 귀에 거슬린다. 마치 여자의 삶이 폐경과 함께 멈추는 듯한 기분마저 드는 것은 어인일일까? 하여 다른 말인 완경기로 부르고 싶다. 폐경기 여성들은 호르몬 변화로 여러 가지 신체적 증상을 겪는다고 한다. 식은땀이 흐르고 얼굴에 홍조가 나타나며 심리적 기복이 심하고 우울감이 수시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제2의 사추기라고도 말할까?

하지만 이런 심신의 불편한 변화를 잘 극복하면 완경기는 어찌 보면 여성으로서 외려 자유로운 시간을 갖게 되는 기간이 아닐까 싶다. 그야말로 삶의 완숙 단계라고나 할까? 그동안 육아 양육, 남편 뒷바라지 등에 얽매여 우리 세대 여인들 다수가 자신의 이름 석 자도 까맣게 잊고 살지 않았던가.

이제는 어느 정도 가세도 안정 되었고 아이들도 스스로 자신들을 챙기는 나이가 됐으며 밖으로만 나돌던 남편도 일찍 집안으로 찾아드는 시기에 이른 게 여성의 완경기 때라고 볼 수 있다.

언젠가 서울 어느 소 극단에서 여성 폐경기를 제2의 인생 새 출발 시점으로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을 관람한 적 있었다. 이 연극에서 주인공은 생리대가 그동안 여성의 삶을 옥죄어 왔었고 남성들의 성적 지배하에 있게 했다며 갈가리 찢는 모습을 봤다. 그 행위는 무엇을 의미할까? 여성으로서의 삶의 해방이 아닐까 싶다. 물론 요즘 시대는 옛날처럼 여성들이 가사 노동에 얽매이는 시간은 줄었다고 하나 여전히 여성들의 심신을 얽어매는 굴레가 주변에 무수하다. 특히 쉰 세대라고 할 수 있는 50대 연령층의 베이비붐 세대 여성들은 이즈막도 명절 증후군을 비롯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효부들도 있다. 이런 점으로 미뤄보아 부모를 모시는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가 마지막 아닐까 싶다. 이런 처지다보니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딸로서 그 역할 분담이 어느 땐 너무 심하게 가중되어 정작 자신은 잊고 살기 예사이다. 젊었을 땐 어떤 일도 그다지 힘든 줄 몰랐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딸, 며느리, 어머니, 아내로서 주어지는 역할에 대한 육체적 심리적 부담이 너무나 크고 무겁게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나 같은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명절 때면 시댁인 포항을 가야하고 이때뿐만 아니라 시부모 기제사 때도 꼭 참석해야 하고 시댁, 친정어머니, 남편, 아이들 등 모두가내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젠 손아귀에 잔뜩 움켜쥐었던 능력에 부치는 일들은 하나 둘 놓아버리려고 마음먹었다. 심신을 구속하는 일들은 이젠 버겁다. 이런 나를 위해 며칠 전 친구는 그동안 자신이 모아온 레코드판을 수 십장 택배로 보내오며 마음이 울적하거나 힘들 때 아날로그 음악에 심취해보라고 권한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디지털 기계음에 귀가 시달려서인지 점점 가슴도 삭막해진 듯하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삶이 편리해질수록 인간의 심성은 각박해지고 있다. 그에 의한 빈부 격차의 위화감, 상대적 박탈감이 현대인들의 심성을 멍들게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 모든 게 그릇된 욕심 탓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조금치라도 분에 넘치는 일, 헛된 욕심이다 싶은 것은 빨리 포기하고 혹여 마음속에 탐욕이 자리했다는 생각이 들면 과감히 그것을 내려놓는 일에 주력할까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면의 무르익음과 함께 심신을 홀가분하게 비우는 일일 것이다.



/김혜식 하정문학회 회장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