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연히 어느 지인을 시장에서 만났다. 그녀는 나를 보자 반색을 하며, " 따님들이 직장도 잘 잡았고 인물이 출중하다고 들었는데 좋은 자리 중매해 볼까요?" 라고 말한다. 나는 '좋은 자리'라는 말에 솔직히 귀가 번쩍 뜨였다. 언제부터인가 사회 각계각층에 불어온 여풍(女風)은 왠지 남자들의 사회적 입지를 좁히고 있는 듯하다. 요즘 젊은이들만 살펴봐도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취업도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형국이다 보니 지인의 '좋은 자리'란 신랑감 될 청년이 결혼 조건을 어느 정도 완벽에 가깝도록 갖췄다는 의미 아닌가. 나또한 그녀의 말에 구미가 당긴 게 사실이다. 하나 난 침착하게 상대방의 성(姓) 씨와 집안 내력만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묻기도 전에 신랑감 될 사람이 권력기관에 근무하며 명문대를 졸업했고 집안도 부자라는 말을 해왔다.

그녀의 말에 난 엉뚱하게 시어머니 될 분의 인품은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갑자기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녀는 시어머니 될 사람이 이런 부분은 못을 박았다며 그 내용을 숨김없이 털어놓는다. 집안들이 많으니 사촌까지 예단을 챙겨야 하며 자신은 명품 핸드백, 모피 정도는 해줘야 하고 시아버지 될 사람은 배기량 큰 자동차 한 대는 예단으로 해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위 혼수로 열쇠 몇 개와 맞먹는 주문이어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결혼이 무슨 장삿속인가.

그녀는 내게 딸에 대해 상세히 말해보라고 다그친다. 그 말에 별로 크게 자랑할 것은 없지만 매우 알뜰하고 검박하다고 하였다. 작년에 대학 졸업 후 직장을 잡은 둘째딸, 큰딸은 1년 간 저축한 돈이 꽤 된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딸들 직장이 매우 좋은 곳이어서 월급이 센 듯하다고 부러워한다. 그 말에 실은 공무원들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눈이 화등잔만 해진다. 쥐꼬리 만 한 월급으로 어찌 그 많은 돈을 저축 했느냐고 되물으며 자식 교육을 잘 가르친 거 같다고 한다.

그녀의 말에 가정교육만큼은 철저히 가르쳤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도 어린 딸들이 있는데 가정교육을 어찌 가르쳐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한테 한 수 부탁을 해온다. 그녀의 말에 내 나름대로 실천한 나의 딸들에 대한 가정교육을 들려줬다. 옳고 그른 것을 정확히 가릴 것과 양심을 속이는 일은 저지르지 말 것이며 항상 어른들을 공경할 것과 말을 함부로 하지 말 것을 평소 주지 시켰다고 하였다. 무엇보다 평소 원칙을 지키고 삶의 철학을 정직과 성실로 정립 시켜주었고 아이가 원한다고 부모가 도깨비 방망이가 되진 않았었다고 하였다.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지 않아 늘 약간의 결핍을 느끼게끔 하여 물건의 소중함, 돈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 교육도 실천했다고 했다.

사실 우리의 꿈나무들인 아이들 교육은 최초의 교사가 부모이다. 부모로부터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은 아이는 훗날 어른이 돼서도 남에게 손가락질 받는 일은 결코 저지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려서 받은 가정교육이 아이의 장래를 좌우한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매사 모법이 되는 사람을 일컬어 흔히 '본대' 있다는 말이 바로 가정교육의 충실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요즘 학교 폭력, 청소년 범죄가 날로 증가하는 것도 실은 학교 교육의 문제점보다 가정교육, 즉 밥상머리 교육이 실종된 탓임은 다 아는 바이다. 하지만 밥상머리 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하면서도 가정에서 그것이 제대로 실천 안 되는 것은 쫓기는 일상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가 파하면 학원 순례 시키는 것에 교육을 의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핵가족화 되면서 집안에 조부모가 안계시므로 역대교육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나 또한 지난날 교육 사업을 하느라 맞벌이를 했지만 아이들의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닫고 틈만 나면 아이들 밥상머리 교육에 주력했었다. 그런 노력 때문인지 세 딸들이 반듯하게 자라주었다.

특히 딸들은 남의 가문을 책임질 안주인이 될 사람들이다. 지혜롭고 현명한 아내, 훌륭한 어머니, 효심 깊은 며느리, 딸들은 사회의 초석이요, 보배이기도 하다. 요람을 흔들던 손이 세계를 흔드는 것도 바로 이때문임을 딸을 둔 어머니들은 잊지 말아야 하리라.



/김혜식 하정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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