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령 지닌 천성을 버리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도 가슴을 베이고 그 상처로 몇날 며칠 끙끙 앓는다고 하여도 봄은 그런 나를 그냥 방치하진 않을 것으로 믿는다. "보아라! 아기의 젖니 같은 연둣빛 새순이 나목마다 돋고 있잖니? 청춘 남녀들이 미래를 향해 웨딩마치를 울리는 소리가 안 들리니? 이웃집 철수가 그토록 원하던 회사에 취업을 했다는 새 소식도 들리지 않니? 자신의 몸을 낮춰 국민의 공복으로 충실히 일할 청렴을 생명으로 여기는 새 정치인도 머잖아 탄생하지 않니? 힘을 내라 힘을!" 라고 새 봄은 내 곁으로 바짝 다가와 자꾸만 처지려는 내 어깨를 토닥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지난겨울은 인생 무대에서 배우로서 온갖 역할을 도맡으며 치열한 삶과 한바탕 싸움을 벌이는 우리들을 먼발치서 구경만 하였었다.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냉랭한 시선으로 겨울은 우리를 굽어보면서 자신의 할 일을 돌아올 새봄으로 미루기 예사였다. 젊은이들이 취업이 안 되어 실업자가 늘고 있는 것도, 고유가로 인해 치솟는 물가도, 전세 값 폭등도, 온갖 부정부패도 겨울은 어찌 할 바 모르고 수수방관만 해온 게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입지를 확립하기 위해 아주 달콤한 목소리로 "겨울의 혹한이라는 회색빛이 존재하기에 봄의 현란한 꽃들의 색깔을 얻을 수 있을 테고 매화 향기가 멀리 가는 현상도 혹한의 시련 덕분임을 알렸다."라는 무겁고 칙칙한 언어로 우리의 불만을 달래고 자신의 무능함을 눈 가리려 애썼다.
하지만 구경 중에 제일 좋은 구경이 싸움 구경이라는 『충북문학』 제35집에 게재된 시인 박태언의 시 <구경꾼>의 시어를 잠깐 빌리지 않아도 겨울은 참으로 그 인품이 옹색하고 잔인했으며 자신의 무능력을 변명하려는 몸짓이 치졸하기 조차하였다.
한 판 붙었다/ 뭐니 뭐니 해도 싸움 구경이 최고라 하던가/이리저리 역성드는 척 하면서 / 싸움을 부추기는 구경꾼 --하략--
그랬었다. 분명 겨울은 책임감도 사명감도 전혀 없이 우리의 고단한 삶을 팔짱만 낀 채 멀거니 서서 구경만 했던 게 사실이다. 돈 봉투가 이 주머니 저 주머니 옮겨 다니고 권좌의 측근들이 비리를 저지르고 칼바람 속에서도 세상은 한바탕 밥그릇 싸움으로 늘 하루하루가 피비린내 났었지만 겨울은 내내 침묵 만 지켜왔었다. 아니 소생을 방해하는 특유의 특성을 정당화 하여 소멸의 갈무리에만 급급해 했다. 그래도 순박한 민초들은 으레 겨울은 춥고 음침하여 소멸의 계절이려니 이해했다. 그 예로 올해는 혹한에도 서울의 노숙자들은 얼어죽지 않았다는 게무슨 대수처럼 떠들기 바빴던 게 그것이다. 올핸 단 한명의 동사(凍死) 한 노숙 인이 없다는 통계의 수치가 그것을 증명하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어찌 겨울의 무심함을, 능력의 한계를, 또한 박쥐마냥 싸움판 이리저리 붙었던 비굴함을 가릴 수 있으랴. 우리의 가슴이 혹한보다 바이칼 호(湖)보다 더 얼어붙었음을 무엇으로 보상하려나? 겨울은.
하여 겨울은 너무 가혹했다. 그리고 그 곁을 벗어나려는 우리 민초들의 가슴은 낙엽처럼 메말라 나중엔 물기라곤 한 방울도 없어 제풀에 바스라지고 말았다.
"바라옵건대 새로 온 구경꾼 봄이여! 우린 당신의 능력을 은연중 기대하며 당신을 맞이합니다. 전지전능한 당신의 눈길로, 훈훈한 당신의 입김이 닿는 곳 어디든 음습한 그늘도 걷히고 차디찬 인심도 따뜻하게 덥혀 가슴 가슴마다 이기심과 물신주의도 봄눈 녹듯 녹게 해 주소서. 올 봄엔 물질에 눈 어두워 부모를 해하는 자(者)도, 생활고(生活苦)로 자신의 자식을 죽임 시키는 모성의 비정함도, 어려워진 경제로 삶의 피폐함도 당신의 그 넉넉한 햇살로 흔적 없이 녹여서 모쪼록 올봄엔 만사형통(萬事亨通)의 대운(大運)을 국민들 앞에 대령 시켜주소서. 그리고 지켜봐 주소서. 우린 올 봄엔 다시 일어서서 꼭 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을 새로 온 구경꾼인 당신 봄에게 보여주고 말 것입니다. 기필코 꼭."
/김혜식 하정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