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조강지처클럽'서 실패한 '기러기 아빠' 열연SBS '조강지처클럽'서 실패한 '기러기 아빠' 열연

"'길억' 연기하면서 속이 많이 아파요. 이러다가 진짜로 병날 것 같아요."

배우 손현주(42)가 대한민국 '기러기 아빠'들의 애환을 온몸으로 대변하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짠하게 만들고 있다. 14일까지 6회가 방송된 sbs tv 주말극 '조강지처클럽'(극본 문영남, 연출 손정현)에서 그는 실패한 '기러기 아빠'의 전형을 보여준다. 극중 이름 자체가 '길억'이다.

"사실 주변에는 조기 유학을 보낸 경우가 없어 잘 몰랐어요. 모두 가난한 연극쟁이들이라…(웃음). 그런데 길억을 연기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현실은 정말 심각하더라구요. 또 연기일 뿐인데도 연기하면서 살갑게 다가오지 않는 아내와 아들을 보며 화가 많이 나요."

길억은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다 사업이 망해 아내와 아들을 불러들인다. 하지만 길억이 공사판에서 막노동하는 신세가 된 것을 모르는 아내와 아들은 다시 한국으로 온 것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 설상가상으로 아내는 첫사랑과 외도를 한다. kbs 수목드라마 '장미빛 인생'에서는 외도로 최진실을 그렇게 괴롭혔던 그가 이번에는 정반대 입장에 처한 것이 흥미롭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된 딸과 다섯 살짜리 아들이 있는데 조기 유학을 보낼 생각은 없어요. 처가 쪽이 미국에 연고도 있는데 오히려 아내가 반대를 해요. 가족은 함께 살아야죠."

한마디로 이보다 불쌍한 남자가 없다. 길억은 몸까지 아파 병원을 들락거리지만 이마저도 가족에게는 비밀로 한다. 가족을 위해 헌신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배신과 허무함 뿐. 시청자들은 드라마 게시판을 통해 "길억이 대한민국 아빠들의 고충을 대변한다"며 동정표를 보낸다.

경기도 고양시 탄현 sbs스튜디오. 아픔이 많은 캐릭터인 까닭에 그는 녹화에 앞서 리허설을 하는 도중에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동선을 맞추는 리허설인데도 그는 극중 아내 변정민과 티격태격하던 중 완벽한 감정몰입에 금세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됐다. 베테랑다웠다.

"감정을 발산하는 역이 아니고 속으로 죽이는 역이라 좀 힘드네요. 숨도 못 쉬게 힘들 때도 있어요."

특히 유난히 대사가 길다. 길억을 통해 기러기 아빠의 애환과 조기 유학에 따른 가정 붕괴의 폐단 등을 꼬집으려는 문영남 작가의 의도는 긴 대사로 표현된다. '장미빛 인생' '바람은 불어도' 등 손현주에게 늘 힘을 실어줬던 문 작가다.

드라마 초반 그가 친구를 앞에 두고 술잔을 기울이며 뱉어낸 독백은 그중에서도 압권. 방송 직후 그의 애절한 연기에 시청자들은 "마음으로 울었다"며 지지를 보냈다. 그런데도 그는 ng가 거의 없다.

"ng 잘 안 내요.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창피하잖아요. 연차가 몇인데…(웃음)."

손현주는 올해 아주 바쁘게 보냈다. 드라마는 '히트'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에 이어 '조강지처클럽'이 세 번째고, 여기에 영화 '펀치 레이디'와 '더 게임'을 찍었다.

"지난해 부상을 겪어 활동을 못했어요. 그렇다고 올해 일부러 많은 작품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말 잘 듣고, 촬영장에 일찍 와서 기다리고, 편하고, 술도 잘 사니까 연출자들이 계속 찾는 것 같아요. 쉬어야 하는데 '너밖에 없다'는 말에 속으면서도 또 하게 돼요(웃음)."

그는 지난해 초반 sbs 특집드라마 '내 사랑 클레멘타인'을 촬영하다 왼쪽 무릎 후방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등의 큰 부상을 겪었다. 현재 철심을 박아놓은 상태인데 부상 직후에는 거동이 불편했다. 그래서 반년 이상 쉬어야 했다.

"촬영하다 부상했는데 산재 처리가 안됐어요. 배우라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그때 뼈저리게 들었어요. 가장으로서 걱정도 많이 되고…. 원래도 씀씀이가 크지는 않았지만 사고 이후 더욱 아끼고 삽니다."

몸이 재산인 배우로서 심한 부상을 겪고 나니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던 듯. 그러나 pd들이 가장 선호하는 연기자 중 한 사람인 그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지팡이를 짚고 나와도 좋으니 출연해달라"는 부탁에 '여우야 뭐하니'에 출연하는 등 '인기'를 과시했다.

"이제는 악역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진짜 악역. 어울릴까요?"

서서히 달아오르지만 반대로 잘 식지도 않는 뚝배기 같은 연기자 손현주가 브라운관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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