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면서 시원한 맥주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맥주 중에서 카스나 오비 블루와 같은 맥주를 라거 맥주라고 부르는데, 라거 맥주는 저온에서 발효하는 효모로 만든다. 효모는 발효 방식에 따라 '상면' 발효와 '하면' 발효 로 구분한다. '상면' 발효 효모는 25℃ 정도에서 발효하면서 위로 떠오르는 특징이 있고, '하면' 발효 효모는 섭씨 10℃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 발효하면서 아래로 가라앉는 특징이 있다. 라거 맥주는 대표적인 '하면' 발효 맥주이다.

흔히 이스트라 부르는 효모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끓는다'는 뜻인데, 발효하면서 생기는 이산화탄소 거품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오늘날에도 빵을 부풀도록 하기 위해 '이스트'를 사용한다. 또한 효모는 발효하면서 알코올을 만들기 때문에 기원전 수천 년 경부터 인류가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 속에서 인류와 같이 했던 생물이다. 심지어 바빌로니아의 유적이나 이집트 유적에서도 효모에 대한 기록이 발견된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효모가 다양한 종류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유럽의 대항해 시대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5세기에 유럽인들이 대서양을 건너서 전 세계의 각지로 탐험하면서 효모도 덩달아 세계 여행하게 되었다. 그 중 남미에서 살고 있던 야생 효모가 독일의 바이에른 주 수도원의 와인 저장고에 도착하면서 새로운 맥주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 당시 수도사들은 맥주 양조에 관심이 많았는데, 오랜 금식 기간이 끝나면 음식과 함께 영양이 풍부하고 기분 좋은 맛을 내는 음료를 마시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우연히 대서양을 건너 먼 남미로부터 온 효모는 수도원의 와인 저장고에서 와인을 만드는 효모와 결합하여 새로운 하이브리드 자손을 만들었다. 그 전까지 맥주는 '상면' 발효로만 만들 수 있었지만, 이 새로운 효모는 와인 저장고의 낮은 온도에서 발효하여 새롭고 감칠맛을 가진, 차고 신선한 라거 맥주를 만든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이 효모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지만,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영국의 공동연구팀이 남미 파타고니아의 너도밤나무 숲에 살고 있는 야생 효모를 발견하였는데, 이 효모와 라거 맥주를 만드는 효모의 유전자 서열이 99.5% 나 일치하는 것을 발견했다. 드디어 먼 이국에서 부모 효모를 찾은 것이다! 이젠 유전자 서열 때문에 부모 찾는 일이 사람만 쉬워진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남미 야생 효모와 독일 와인 효모가 만나서 바로 새로운 하이브리드 효모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처음에 두 효모가 결합하면서 불완전한 형태의 자손이 만들어졌다가 유전자의 변이가 거듭되면서 점차 낮은 온도에서 발효하는 특성과 당 대사 기능이 향상되어 달고 맛있는 술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우리는 부모의 장점만 닮은 자손이 바로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결혼할 때에도 자신과 다른 부분에서 장점을 가진 사람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의외로 자손의 경우에 장점보다는 단점만 닮은 것 같은 자손을 얻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당신의 뛰어난 두뇌와 내 미모를 닮은 애가 태어난다면 광장한 인물이 될 거야."라고 미모의 여배우가 유혹하자, "당신의 멍청한 머리와 내 못생긴 얼굴을 닮은 애가 나온다면 큰 일" 이라고 응수한 버나드 쇼의 말도 실제로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러나 그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비록 단점만 닮은 것 같은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도 언젠가 그들의 자손으로부터 그 여배우가 꿈꾸었던 뛰어난 두뇌와 미모를 가진 자손이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만약 지금 "넌 도대체 누굴 닮았니?"라고 책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들의 먼 미래에 나타날, 우리가 바라던 장점만을 가진 멋진 자손을 상상해 보는 것이 더 낫다. 우리 아이 안에는 그런 유전인자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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