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주위를 식별할 수 없을 만큼 어두운 밤길을 걸어 석유 심부름을 할 땐 죽기보다 싫었다. 그런데 자주 그 심부름을 하다 보니 나중엔 그다지 밤길이 무섭지 않았었다. 공동묘지 앞을 지나칠 땐 귀신 따윈 상상 속의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기도 했었다. 드디어 겁쟁이였던 내 가슴에 담력이 자라기 시작 했다. 한편 어머니를 위해 내가 심부름을 한다고 생각하니 어린 마음에 왠지 마음이 뿌듯하기조차 했었다. 그 이후로 화장실도 혼자서 갈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어린 날의 어머니 교육은 훗날 내가 세상사에 부딪칠 때마다 큰 힘이 되고도 남음 있었다. 젊은 날 남편의 세 번 사업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삶의 고통과 역경을 버틸 수 있었던 배짱도 순전히 그 덕일지도 모르리라. 나의 경우를 보더라도 가정교육이 얼마나 학교 교육못지 않게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절감한다.
요즘 아이들은 학원 순례, 입시 공부에 시달려서인지 심신이 매우 유약하다. 무엇보다 정신력이 강하지 못하다. 사소한 어려움도 걸핏하면 자살로 맞선다. 청소년 자살이 그것이다. 세상을 살며 지식, 지혜도 필요하지만 이에못지 않은 것은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정신력이다. 때때로 잡초 근성이 필요하다고나 할까. 흔히 시골 길에서 볼 수 있는 질경이를 보라. 질경이는 밟으면 밟을수록 잎을 더욱 무성하게 키우는 식물이 아니던가. 우리들도 이런 질경이의 생태를 모방할 필요성이 있다면 지나칠까.
어떤 지인은 나를 보고 여자지만 배짱이 두둑하다고 한다. 배짱은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큰 힘이다. 매사 두려움을 앞세운다면 어찌 험한 세파를 헤쳐 나가랴. 내 자신이 남의 눈 안 가리고 말 한마디라도 남 해코지 안하며 성실하게 사는데 두려울 일이 그 무엇이랴. 그래서인지 어떤 이는 내가 참으로 당당하다고 한다. 아직 성차별이 잔존해 있는 우리 사회 정서는 여성의 당당함에 대해 관대하지 못하다. 그러나 당당함은 매사 떳떳하여 추호도 거리낄게 없을 때 행할 수 있는 언행 아니던가.
나의 어머니는 세상사에 부대낄 때마다 좌절하지 않는 용기와 배짱, 그리고 여자라도 꼿꼿한 기상, 의와 정을 지키는 일이 사람의 도리임을 지난날 가정교육으로 나의 가슴에 심어주었다. 그래서인지 나의 정신적 재산 중 가장 소중한 것을 손꼽으라고 한다면 따뜻한 인간적 가슴과 질경이 같은 잡초 근성이다.
/김혜식 하정문학회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