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교수님과 치열한 한 학기를 보냈다. 교수님은 은퇴를 앞두고 책을 한권 집필하시기로 했고 나는 박사논문을 마무리 했다. 일주일에 두어 번 교수님 연구실에서 공부하다보면 책을 쓰시던 교수님이 뜬금없이 시를 읊어주시는 것이었다.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건설회사에 계시다가 명예퇴직 후 경영학 교수로 임용되셨던 분이다. 공학도가 시에 관심이 있다는 것도 신선한 느낌 이었는데 그 시가 초등학교 때 썼다는 게 더욱 놀라웠다.

경상북도 깊은 산골 마을에서 산 과 들, 별을 바라보며 시를 쓰던 소년은 먼 훗날 노벨상을 타겠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교수님은 한 사건을 계기로 그 꿈을 접고 공학도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글짓기 숙제가 있어 나름 그동안 써왔던 글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을 선생님께 내 보여 드렸더니 선생님이 대뜸 '야, 너 이거 어디서 베꼈어?'그러면서 핀잔을 주어 눈물이 쏙 빠지게 속상했다는 것이다. 산골 마을에 교과서도 제대로 없어 다른 누구의 작품을 거의 접할 수도 없었는데 선생님의 황당한 반응은 그의 가슴속에 오랫동안 상처로 남아 문학에 곁눈도 주지 않은 채 초로의 나이가 되었다고 한다. 선생님이 자신의 재능을 인정해주리라는 기대에 차있던 소년은 지금도 그 선생님의 이름을 기억하며 자신이 가고자 했던 길을 제대로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은퇴기념 전문서적을 집필하시면서 어릴 적 썼던 시들을 책에 삽입하시는 모습을 보며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오래전부터 전해오던 이야기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아이는 배가고파 온 종일 우는 게 일이었다고 한다. 아기의 부모는 우는 아이에게 회초리로 울음을 멎게 하다 보니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매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어느 날 집 앞을 지나던 노스님이 매 맞는 광경을 물끄러미 보다가 불연 무슨 생각이 난 듯 집으로 들어와서 아이에게 넙죽 큰절을 올렸다. 이에, 놀란 부모는 스님에게 연유를 묻자 "이 아이는 나중에 정승이 되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곱고 귀하게 키우셔야 합니다." 라고 답하고 스님은 홀연히 자리를떠났다. 그 후로 아이의 부모는 매를 들지 않고 공을 들여 아이를 키웠고 훗날 아이는 정말로 영의정까지 올랐다고 한다. 뒤 늦게 스님의 안목을 깨달은 부모는 수소문 끝에 스님을 찾은 후 "스님은 어찌 그리도 용하신지요. 스님 외에는 어느 누구도 우리 아이가 정승이 되리라 말하는 사람이 없었거든요."라고 말하자 빙그레 미소를 띠던 노승은 "이 돌중이 어찌 미래를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의 이치는 하나이지요. 모든 사물을 귀하게 보면 한없이 귀하지만 하찮게 보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법이지요. 마찬가지로 아이를 정승같이 귀하게 키우면 정승이 되지만, 머슴처럼 키우면 머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니 세상을 잘 살고 못사는 것은 마음가짐에 있는 거라 말할 수 있지요."


논문을 쓰면서 많은 어려움을 만났다. 어쩌면 해내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두려움, 물리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시간, 그 혼돈과 방황 속에서 지도교수님은 기어코 박사가 될 거라고 믿어주시고 격려해 주셨다.

가슴에 꿈을 안고 써 낸 시를 보고 누구의 것을 베꼈다고 말한 선생님이 아니라, 천하게 매를 맞는 아이에게 귀하게 사물을 바라보면 귀하게 된다고 믿었던 스님처럼 내게 용기를 주셨다. 그리고 나는 기어코 그 산을 넘어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었다. 경영학 교수가 쓴 리더십 책속에, 초등학생이 별을 헤아리며 썼던 시가 페이지마다 그려졌다.


만학의 고통을 행복한 시간으로 채워준 것은 노벨상을 꿈꾸던 소년이었다.



/유인순 한국문인협회 천안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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