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경쟁사회로 치닫는 과정에서 더 빨리, 더 많이 채우기 위한 극단의 이기심은 집단간, 지역간, 계층간 불신을 초래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 쪽에서는 예로부터 나누고 베풀 줄 아는 고운 심성을 지닌 민족성에 걸맞게 나눔과 베품의 문화가 사회전반에 확산되고 있어 다행스럽다.

나눔과 베품의 미덕은 홍익인간 정신에서도 엿볼 수 있고, 서로 돕고 힘을 합치는 향약이나 두레, 품앗이 등의 전통적 상부상조의 정신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또한 불교에서는 수행을 위한 여섯 가지의 길(六波羅密)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처음이 '남에게 베풀라'는 보시(布施)이다. 베풀지 않으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 될 수 없고, 상대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눌 때 행복해짐을 일깨운다.

'부자 3대를 못간다'라는 속담은 부를 이루기도 어렵지만 지속하기는 더 어렵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경상도 최씨 가문은 12대에 걸쳐 300여 년 동안이나 만석꾼 집안으로 부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변함없이 세인들의 존경과 칭송을 받은 것은 그만큼 나눔과 베품의 실천을 생활화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경주 최씨 가문에는 후손들에게 재산관리의 철학으로 전해져 오는 가훈과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처신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는 여섯 가지의 육연(六然), 가정에서 지켜야 할 도리를 다룬 10가지의 가거십훈(家居十訓), 그리고 결혼하는 자녀들에게 들려주는 글 등 다양한 형태로 엄격한 후손교육을 실시했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은 한 가문의 대소사로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장안 제일의 부자이면서도 사회적 책무를 다 하려 하고 오만과 탐욕을 경계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 가르침은 사람 사는 도리가 되었고 부자경영의 노하우가 되었다. 아울러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소리 없이 실천한 산 증인인 셈이기도 하다.

아울러 최부잣집 가문에서는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 '재산은 만석 이상 늘리지 말라',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말라'고 하여 탐욕과 오만을 경계하고 부자에 걸맞는 도리를 다 하되 자제하고 절제하여 부당한 방법이나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여 이권을 가로채는 일이 없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사방백리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가훈에 따라 곤궁한 백성을 구하고, '과객은 후하게 대접하라'던 숭고한 인간애도 되새김질 해볼 만하다. 또한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은 무명옷을 입어라'하여 만석꾼의 부잣집에 시집 온 며느리가 비단옷 대신 무명옷을 입으라는 것은 인색해 보이지만 이러한 근검절약의 생활화 정신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흔히 99석을 가진 부자가 1석을 더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탐욕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일제강점기의 국난을 거치면서 악덕 지주들은 더 많은 부의 축적을 위해 혈안이 되었지만 대다수는 의병활동이나 독립운동을 위해 가진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는 미덕으로 귀감이 되었다.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돌볼 줄 알았던 최부잣집 이야기는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남의 약점을 악용하여 모은 재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적정이윤의 추구와 정당한 재산증식을 통해 부를 유지했다는 점과 많이 가진 자가 자발적으로 나눔과 베품의 가치를 실현했다는 점에서 본받을 만하다.

이해관계에 따라 대립하고 분열하는 극단의 이기주의 대신에 소외된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나눔과 베품 문화의 확산을 통해 밝고 건강한 사회형성의 기틀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종탁 주성대 교수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