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둥지 증후군을 앓고 있어서 인지 요즘 따라 왠지 집안이 휑하다. 그런 마음에 새삼 집안을 둘러본다. 그러고 보니 무엇보다 너른 평수의 아파트가 더욱 넓어 보이는 것은 집안의 가구가 별반 없어서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우리 집엔 그 흔한 인테리어 가구조차 없다. 어디 이뿐이랴. 안방에 침대도 없는 살림이다. 그나마 큰 살림살이를 손꼽는다면 아파트 생활에서도 화단에 놓인 스무 개의 올망졸망한 장항아리와 서재에 꽂힌 몇 천권이 넘는 책들뿐이다.

이는 집안을 가재도구 등으로 꽉 채우기보다는 꼭 필요한 살림 도구만을 고집하는 성격 탓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사를 하려고 살림살이를 꺼내 놓고 보면 묵은 살림이라 이삿짐이 제법 많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다. 과학이다.'라는 어느 침대 회사의 광고 문구처럼 그 과학을 안방에 들여놓지 않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자녀 교육 때문이라면 지나칠까.

필자는 가정교육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학교 교육이 아무리 공고해도 가정교육이 바로서지 않으면 사람은 사람답게 성장 할 수 없다. 지난날 교육 사업을 하면서 느낀 바이지만 아이들을 보면 부모가 훤히 엿보였었다. 가슴이 따뜻한 아이, 예의범절이 반듯한 아이, 남을 배려하는 아이들은 그 부모를 만나보면 한결같이 인품이 남달랐었다. 이런 사실은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기 때문이리라. 이로보아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는다.

이게 아니어도 나의 세 딸들에 대한 가정교육은 아이들이 성장한 이즈막에도 매우 엄격하다. 이 십 대 초반, 중반, 후반의 세 딸들에게 얼굴만 마주치면 대인관계 시 처세 및 직장 생활에서의 예의를 누누이 타이르곤 한다. 딸들은 결혼 전까지는 우리 집의 가풍을 뒤따르지만 결혼 후엔 시댁의 가풍을 따르되 친정 부모로부터 받은 교육이 밑바탕이 돼야 시댁 가문을 빛내는 며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다.

이렇듯 딸자식 가정교육에 유독 신경 쓰는 것은 단 한 가지 이유에 의해서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딸들은 남의 집 귀신이 될 처지 아닌가. 하여 세 딸들에게 가정교육의 일환으로 어려서부터 부모공경을 몸에 익히게 했었다. 대 여섯 살부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집안을 청소하게 하였고 밤마다 연년생인 두 딸들에게 안방을 깨끗이 청소한 후 이부자리를 깔아놓는 일을 시켰었다. 부모가 샤워를 할 때는 속옷을 챙겨주도록 타일렀었다. 이는 사소한 일부터 부모를 공경하는 자세를 심어주기 위함에서였다. 이런 일은 막내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요즘도 막내딸은 밤마다 나의 방을 깨끗이 청소한 후 이부자리를 깔아주곤 한다. 이렇듯 딸들이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잠자리를 보살펴 주고 있는데 어찌 안방에 침대가 필요하랴.

늑대 소년 이야기를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인간은 어려서 교육이 평생 그 아이의 일생을 지배한다고 할 수 있다. 그 것은 삶속에서 사소한 일부터 출발한다. 사소하지만 사람으로서 가장 큰 덕목인 효를 거듭 강조하는 것은 얼마 전 우리 고장에서 남편과 부부 싸움 끝에 시어머니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시어머니를 목 졸라 살해한 어느 여인의 사건을 접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시어머니가 누구인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의 부모이고 자신이 낳은 자식의 뿌리 아니던가. 이 여인 또한 어려서부터 자신의 부모로부터 철저히 효에 대한 가정교육을 받았더라면 이런 인면수심의 일은 저지르지 않았을 일이다. 외국 유학, 여러 곳 학원 순례가 교육의 전부는 아니리라. 사람답게 성장시키는 가정교육이야 말로 가장 아이들에게 필요한 선행 교육이다. 올 여름 방학 땐 아이들에게 집안에서 부모님을 공경하는 교육부터 우선시 하면 어떨까? 그 교육이야말로 아이들을 거목으로 성장시키는 참 교육이 아닐까 싶어감히 외람된 제안을 해본다.



/김혜식 하저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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