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끝에 단비'라는 말이 실감난다. 금년의 극심한 가뭄을 '104년 만의 가뭄'이라는 말까지 한다. 논과 밭은 마르다 못해 갈라지고, 웬만한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낼 정도이니 농민을 비롯해 온 국민의 마음도 아팠다.

일기예보처럼 드디어 장마전선이 북상하며 지난 6월 29일 밤부터 부슬부슬 곱게 내렸다. 거리에는 즐겁게 비를 맞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환호성도 들렸다. 대자연이 만들어 내는 생명수를 삼라만상이 반기며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가운 마음에 교정(校庭)에 나가 보았다. 마치 기다리고 기다리던 손님을 마중 나가는 벅찬 마음으로. 간간이 물을 주어도 감질나서 아우성치던 화단과 화분의 수목과 꽃들이 온몸으로 생명수를 맞으며 환호한다. 심각한 가뭄 끝에 천금 같은 비가 내리니 농민들의 기쁨은 얼마나 클까! 싱그러운 넓은 잎 사이로 연붉은 꽃을 선보일 칸나도, 창문 너머로 꿈나무들의 교실을 들여다볼 정도로 키가 컸을 해바라기도 바닥에 맴돌고 있는 것을 보니 서울의 탈북(脫北) 청소년 대안학교에 입학한 17세 된 어느 남학생에 관한 신문 기사를 읽은 생각도 난다.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 평균 키(138㎝)에도 못 미치는 입학 당시 137㎝이라니….

여기저기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많이 들렸다. 밭작물도 가뭄으로 타들어갈 정도이고, 안타깝게도 하지가 넘도록 모내기를 못한 곳도 있고, 갈라지는 논바닥을 차마 볼 수 없어 소방차로 물을 뿌리고, 지하수를 뿜어 올리려고 해도 잘 나오지 않고, 밭에 어렵게 심은 고구마 모종들도 말라 죽고…. 이렇다 보니 시장에 채소도 귀하고 농산물 값도 덩달아 오르고 있어, 옛날처럼 기우제라도 지내고 싶은 절박한 상황이었다.

나들이를 나가지 못해도 산야를 촉촉하게 적셔주는 모습을 그려보며 어느 때보다도 즐겁고 행복하다. 비가 자주 올 때는 너무 많이 온다고 원망도 받았던 장맛비다. 불청객인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장마였지만 다행히 큰 피해는 없이 오랜 목마름을 해갈하여 주며 점잖게 거방지게 내리는 자태도 미덥고 고맙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천금 같은 비처럼 사회와 국가에 이바지하며 모두가 반겨주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는 것이 우리의 바람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어떤 사람을 만나면 대개는 반갑고 기쁘지만, 어떤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것만 못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언행에 더욱 신중해야 하겠다는 성찰(省察)도 하게 된다.

또 장맛비가 온다고 한다. 그 때도 피해 없는 흡족한 비를 내려 올해도 풍년이 되어 국민정서도 풍요롭기를 바란다.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이번 반가운 장마처럼 가뭄 끝에 단비 같은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 불신하고 경계하고 힐난하는 악연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서로 믿고 반겨주고 칭찬해주며 따뜻한 가슴과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좋은 인연으로 학교폭력 없는 학교, 심신이 건강한 사회, 온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반가운 장맛비가 무언의 교훈을 주고 있다.



/김진웅 청주 경덕초등학교 교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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