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생활 속의 지혜를 말할 때 지혜를 얻기 위한 일종의 행위로써 우리는 '배웅'을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의 지혜는 지나간 과거의 무한한 시간과 공간속에서 인생 선배들이 터득하고 물려준 훌륭한 진리의 앙금 내지는 그 부스러기들의 축적물이라 하겠다.

이러한 지혜를 탐닉하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책 이이야말로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이 아닐까? 라고 생각을 해본다. 본래 책이란 양과 질을 따지기에 앞서 여러 사람들의 사상과 인간적인 소양이 그려진 것으로써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훌륭한 지혜를 독자들이 짧은 시간 내에 섭취하고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일상에서 인문적인 소양을 기르기 위하여 독서의 필요성을 강조하거나 권장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책읽기를 권장하거나 권장 받을 때 우리는 책 선택의 문제를 중요시 여기는 성향이 농후하다. 어떤 이는 고전과 양서에서 찾는 인문학적 주요성을 운운하고, 또 다른 이는 직업과 관련된 잡서들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복잡하고 소통이 단절된 사회 속에서, 순수한 학문의 전당이 취업만을 위한 전문 학원으로 탈바꿈하는 상황 속에서, 그리고 인문학 교육의 부재로 미성숙한 인간들을 양산하는 집단속에서 보편적으로 생각해 볼 때 어쩌면 타당할 수 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애매모호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쉽게 말해서 독자의 선택에 의해서 가치가 부여되고 독자의 마음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책이 더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고 말해야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행위는 재미를 느끼는 것에서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책읽기도 재미를 느낄 때 시작된다. 물론 독자 나름대로의 자질과는 상관없겠지만 어찌 되었든지 간에 독자의 재미를 유발시키지 못하는 책은 읽혀지지 않을 것이며 또한 생명력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책을 선택함에 신중함이 있어야 하겠고, 선택한 책에 대하여 단순한 독자가 아니라 바로 창작자라는 의식으로 읽어야하며 그 책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풍토가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요즘 서점가에는 인문학에 관련된 서적보다는 입시나 취업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한 전문기술서등으로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책은 많지만 읽을 만한 책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런 말의 뒤에는 ''참여와 소통의장'' 다시 말해서 인문적 소양이 결여된 현대사회의 각박한 상황의 일면을 꼬집는 사실들이 내포되어 있다.

시간이 점점 지남에 따라 인문학의 중요성은 희미해지고 필요성조차 사라질 것 같아서 마음이 저려온다. 사실상 우리가 흔하게 말하는 직업윤리나 공학적 윤리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윤리가 인문학 교육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인문학 교육의 바탕이 없는 인성교육이란 허세이고 겉치레 일 뿐이다.

취업이나 직업에 관련된 책을 제외하고 인문학적 소양을 쌓기 위한 책들은 언제 읽을까? 혹자들은 삶의 여유가 있을 때 읽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기 수련이나 필요성에 따라 언제든지 읽으면 될 것 같다. 독서란 삶의 여유가 아니라 시간 쪼개기의 '틈새의 장'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우리학교에는 독서 졸업 인증제를 비롯하여 독서와 토론 (문학, 철학, 역사) 등 인문적 소양과 인성교육의 밑바탕이 되는 여러 가지 인문학 과목들이 설강되어있다. 과목을 수강하면서 그리고 책 속의 훌륭한 사상이나 가르침을 토론하면서 학생들 나름대로는 현재의 정신적 삶에 휴식을 제공하고 미래의 설계에 자극을 가진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학생들이 고맙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아울러 이러한 과목들을 설강하도록 허락해 준 학교에 감사드리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 또한 이 속에 참여하면서 미래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극히 작은 한 점의 인문학적 부품이고 싶다.



/박기태 (건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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