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 사이를 천륜이라고 한다. 천륜이란 하늘이 갈래갈래를 밝혀 준다는 말이다. 노자는 하늘이 만물을 다 같이 본다는 것을 밝혔고 공맹은 하늘이 사람을 만물과는 달리 보아 준다고 보았다. 그래서 공자의 뜻을 받아 사람과 삶을 헤아렸던 맹자는 사람에게는 사람의 짓이 이고 개에게는 개의 짓이 있다고 보았다. 즉 사람과 짐승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를 인수지변(人獸之辨)이라고 했다.

목숨은 모두 숨을 쉬고 움직인다. 이를 생물이라고 한다. 옛날부터 의식하지 않는 것은 음양(陰陽)이고 의식하는 것은 귀신이라고 보았다. 물론 여기서 귀신이란 모든 목숨의 혼(魂)을 말한다. 개의 귀신도 있고 개구리의 귀신도 있는 셈이다. 나아가 개의 의식도 있을 것이고 개구리의 의식도 있을 것이다. 어느 생물이나 죽음을 당하게 되면 몸부림을 친다. 왜 몸부림을 치는 것일까? 아무리 미물이라도 나름대로 의식하는 까닭이다. 그러니 사람만 의식한다고 장담할 것은 없다. 목숨에 의식을 누가 주었을까? 노장은 도가 주었다고 말하고 공맹은 하늘이 주었다고 보았다. 도나 하늘이나 다 같은 말이다. 그래서 인심(人心)이나 천심(天心)은 다 같다고 보았다. 인간의 천심을 정리(情理)로 보아도 된다. 정리를 왜 천륜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만인이 다 같게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사람은 사람답게 느끼고 생각하고 이해하며 판단한다. 그래서 감정도 있고 이성도 있게 마련이다. 무수한 감정을 사람들은 나름대로 간직하고 이성도 간직한다. 그래서 백인백색(百人百色)이란 말이 생겨났다. 그러나 누구나 다 같이 간직한 감정이나 이성이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부모의 정이다. 부모의 정(情)은 인의(仁義)의 원천으로 보아도 된다.

안연이 죽었을 때 안로가 공자의 수레를 팔아서 안연의 덧관을 사서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자고 했다. 안로는 안연의 아버지이다. 이렇게 청하는 안로에게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잘난 아들이든 못난 아들이든 아버지가 갖는 정은 다름이 없는 것이오. 안연은 내가 사랑하는 제자이지만 그 사랑이 내 아들에 갖는 정과는 다르고 내 아들이 죽었을 때도 나는 내 수레를 팔아서 덧 관을 만들어 주질 않았지요. 그러니 내 수레를 팔아서 안연의 덧 관을 마련할 수는 없지요.” 안로가 죽은 아들을 생각하는 정이 선생의 수레를 팔아서라도 안연의 혼을 성대하게 위로해 주고 싶었던 것을 공자는 이해한다. 그러한 정은 한이 없어서 예(禮)를 벗어나가기 쉽다.
인간의 행위가 어떠한 것이든 예를 벗어나면 안 된다. 예는 어긋남이 없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보면 된다. 겸손하고 양보하는 마음의 행위가 예를 만족시키지만 지나친 겸양도 어긋남이며 처지는 겸양도 어긋남이다. 사리에 알맞아야 한다. 이것이 예의 중용(中庸)일 것이다.

부모의 정은 다 같다. 죽은 아들이 슬퍼 흘리는 아비의 눈물에는 귀천(貴賤)이란 없다. 다 같은 눈물이다. 그러한 눈물을 금 쟁반에 받는다고 더욱 슬픈 것도 아니며 오지그릇에 받는 다고 덜 슬픈 것은 아니다. 슬퍼할 일이면 슬퍼하고 기뻐할 일이면 기뻐하면 된다. 여기에 무슨 의미를 붙여서 꾸미고 과장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마음을 꾸미고 행동을 꾸며서 무슨 의미를 부여하여 과도하게 포장하려고 하면 할수록 과시욕이 생기는 법이다. 겸양은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떠나면 허식일 뿐이다. 허식이나 허세가 마음의 성실을 앗아가는 제일의 도둑인 셈이다. 이러한 도둑들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해야한다. 인간은 양 같을 수도 있고 살쾡이처럼 될 수도 있다.

그렇게 할 수 있게하는 것이 정(情)이다. 그러한 정을 갈무리할 수 있는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부모의 정에 있다고 보아도 된다. 그러한 부모의 정을 바탕 삼아 꾸며서 덧보이게 장식하는 정을 다스린다면 인간의 허세는 부끄러워질 것이다. 깊은 물과 얕은 물은 그 흐름이 다르다. 얕은 물은 소리를 내고 흐르지만 깊은 물은 소리를 내지 않고 흐른다. 소리를 내고 흐른다 해서 더 깊게 더 빨리 흐르는 것이 아니다.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내색을 하지 않고 허식이나 허세를 버리고 그저 묵묵히 흐를 뿐이다. 그래서 깊은 물인 것이다. 부모의 정(情)처럼.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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