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초등학교 시절, 여름 햇볕에 온몸을 새까맣게 그을리며 강으로 냇가로 멱감으러 돌아다니다가 좁은 동네 골목을 다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쏘다니던 그 날, 참으로 신기한 일을 발견하였다.

장수잠자리가 골목길을 따라 낮게 날아오다가 사람에게 가까이 와서는 급상승하며 도망을 가고, 한참 후 다시 낮은 고도로 비행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장수잠자리는 푸른 빛을 띠는 아주 고급스럽고 큰 것이어서 한 마리라도 잡으면 친구들에게 한껏 부러움을 사는 것인데 문제는 이 녀석이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고추잠자리나 된장잠자리처럼 철조망 가시 끝이나 나무 울타리에 앉지 않고 마치 비행기처럼 지속적으로 날아다니니 잘 잡힐 리가 없었다.

그런데 계속 날아다니기만 하는 이 녀석의 포획 방법을 내가 드디어 찾아냈다. 우연히 댑싸리로 만든 빗자루를 들고 있다가 낮게 비행하며 다가오는 장수잠자리를 향해 힘껏 휘둘렀더니 신기하게도 이 녀석이 댑싸리 사이에 끼어 파득파득 날갯짓을 하며 잡히는 것이었다. 나는 대단한 사실을 발견한 양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고 너무도 잘 잡히는 모습을 본 친구들이 모두 따라 하며 잡았다.

참으로 재미있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잠자리를 잡았다. 얼마를 그렇게 손쉽게 잡다보니 이제는 다른 잠자리도 이 방법으로 잡고 싶었다. 눈을 들어 잠자리 있는 곳을 찾아보니 우리를 피해 밭에 심겨져 있는 대 파의 뾰쪽한 끝부분에 수백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 파밭으로 들어갔다. 댑싸리 빗자루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고랑을 따라 살금살금 다가가서는 대 파 끝에 앉아 있는 잠자리를 향해 냅다 휘둘렀다. 예상대로 잠자리는 하나도 어긋남 없이 모두 댑싸리 빗자루 속에서 날개를 파득이며 내게 잡혔다. 어느덧 종이 봉지는 잡힌 잠자리로 수북했다.

친구들에게 엄청난 잠자리 포획을 자랑하고 난 얼마 후 흥분을 가라앉히고 돌아본 파 밭! 어린 내 눈으로 봐도 그곳은 말 그대로 초토화가 되었다.

댑싸리 빗자루로 얻어맞은 대 파는 모두 하나같이 허리가 꺾여 넘어져서 이미 상품 가치는 물 건너간 뒤였다. 많은 친구들에게 큰 소리로 자랑을 한 뒤라 내가 그러지 않았다고 부인할 수도 없고 멀리 도망갈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 날 저녁 우리 집에 찾아 온 파밭 주인 아저씨는 '허허, 그 놈 참.' 하며 쓴 웃음만 지을 뿐 야단을 치지 않으셨다.

그 파밭이 그 집 한 해 농사였을 텐데 그 분은 그 해를 어떻게 견뎠나 모른다. 그리고 잠자리는 왜 꼭 대 파의 뾰쪽한 끝에 아슬아슬하게 앉기를 좋아하는지 모른다.

나는 생명력이 넘치는 힘찬 모습으로 새파랗게 자라는 대 파를 보면 저절로 힘이 솟는다. 그리고 그 파 끝에 앉은 잠자리를 보면 어릴 때의 내 모습이 보여 큰 웃음이 나온다.

그 옛날 그 아저씨의 자녀들을 좀 찾고 싶다. 그리고 그의 아버님께 참으로 미안했다고 사과하며 근사한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다.

그 날 그 많은 잠자리를 잡아서 겨우 한 일이라곤 꼬리 끝을 조금 떼어내고 짚을 끼워 그 무게로 높이 날지 못하는 몇 마리를 시집보낸다고 따라 다닌 것과 나머지는 동네 어느 집 닭에게 모두 준 게 전부라는 후일담도 꼭 들려주고 싶다.



/이진영 매포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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