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은 유난히도 극심한 가뭄, 폭염, 폭우 그리고 태풍까지 우리를 힘들게 했다. 그래도 계절의 순행은 오고 있다. 들녘의 농작물에 흰 이슬이 맺히고 가을 기운이 완연히 나타난다는 백로도 지나니 가을맞이를 할 때이다."백로에 비가 오면 오곡이 겉여물고 백과에 단물이 빠진다."고 하는데, 요즈음 비가 너무 자주 내려 걱정이다. 눈부신 초가을 햇살이 내리쬐어 모든 것이 풍요롭고 넉넉하게 채워져야 하는데 ….

가을맞이와 추석맞이를 하는 무척 바쁜 시기이다. 벌초사래가 있어 수월했는데 지금은 옛날이야기이다. 지난 일요일 벌초(伐草) 계획을 하고 회원들에게 미리 통지를 하였는데, 주간예보를 들으니 여간 걱정되는 일이 아니었다. 이틀 전까지도 마음 조리게 하였다. 여기저기에서 "일요일에 비가 많이 온다고 하는데 그래도 벌초를 하느냐?"는 전화가 쇄도하였다. 최종 결정을 내려주어야 하기에 걱정이 많았다. 고민 끝에 토요일 아침 일찍 결정하겠다고 하였다. 그 때가 되면 이튿날 날씨를 상세히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날 새벽에 일어나 예보를 듣고, 131번을 통하여 우리고장 날씨를 확인하곤 강행한다고 문자를 띄웠다. 무슨 일이든지 최종 결정을 하는 데는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비가 오락가락할 때 운동회를 하느냐 연기 하느냐 등을 학교장이 결정을 해주어야 하던 때도 생각났다.

당일 벌초를 할 때 오전에 비가 조금 오려니 했지만, 일이 끝날 나절가웃 동안 잘도 참아 주어 여간 다행이 아니었다. 날씨가 흐려서 더욱 좋았고, 만약 연기를 하였다면 후회할 뻔 했고, 다음 일요일에 비가 많이 올 수도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며 판단을 잘 했다기에 힘이 났다.

서울, 부산 등에서 전날 미리 오기도 하고, 새벽부터 멀리서 달려온 사람들도 있어 더욱 고마웠다. 하기야 조상의 산소를 돌보는 일이니 모두 내 일이지만. 금초를 하다 보니 세대가 바뀜을 실감한다. 필자보다 한두 항렬(行列) 위 어른들이 주축을 이루다가 이제 그 분들은 못 오셨다. 돌아가시기도 했고, 거동이 불편하여 못 오시기도 하였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참석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유롭고 여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손꼽을 정도로 고참이 되었으니 격세지감이다. 그래서 모임을 운영하다보니 뿌리도 알고, 능률도 오르고, 친목 도모까지 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

점심 식사를 청주에서 준비하여 온 분도 있어 매우 고마웠다. 산에까지 자장면을 배달할 수도 없고…. 베품과 나눔, 봉사라는 의미를 되새겨 본다.식사 후 좌담을 하며 장묘문화에 대하여 많은 의견을 나누었다. 납골묘식으로 산소를 개선하자고 한다. 문득 지난 해 일본 규슈지방을 갔을 때 마을 주변에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납골묘를 본 일이 생각났다. 우리도 일본처럼 되면 좋겠다. 원래 우리도 고려시대까지는 화장을 하였다니 가능성도 많고 실제로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따사로운 가을볕에 오곡백과가 익어가고, 학생들도 한 학년 학습을 익혀가고, 우리나라는 3개월 정도 남은 대통령선거를 준비하는 등 분주하다. 모든 일이 알차게 익어가는 오곡백과처럼 가을준비 나아가 유비무환의 교훈으로 독버섯 같은 각종 범죄는 뿌리 뽑고, 날마다 기쁜 소식이 많이 들리는 가을과 추석맞이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김진웅(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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