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이 손짓하여 밖으로 나갔다. 모진 태풍까지 힘겹게 견디어 내고엄마 품처럼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알알이 영글어가는 온갖 곡식과 과일들이 황금 물결을 출렁이고 있다.

불청객 태풍이 몰고 온 많은 아픔을 보고, 장마철보다 더 심한 폭우가 내릴 때는 원망도 하였지만, 산골짜기 계곡물이 만드는 작은 폭포, 시냇물도 넉넉하게 흐르고 저수지마다 만수가 된 것을 보는 마음도 푸근하다. 더구나 식수까지 부족하여 소방차로 급수를 하고 호수와 바다에 녹조로 몸살을 앓아 황토를 뿌리며 안간 힘을 쓸 때 미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을 깨닫기도 하였다. 우리가 각종 공사로 자연을 파헤쳐 경종을 울려주는 것은 아닐까?

가을 햇살은 엄마 품처럼 포근하다. 갓난아기의 대소변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받아내고, 몸이라도 아플 때면 밤을 지새우며 보살피고, 모유를 먹이며 모정(母情)도 자연스레 전해지며 무럭무럭 자라나게 하고 평생 살아갈 건강을 준다. 걸음마를 배우며 한 발자국씩 걸을 때마다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며 살아가며 겪는 온갖 어려움을 이기는 용기와 칭찬과 인내심을 아낌없이 주는 어머니처럼, 모든 삼라만상을 어루만져주고 자양분을 주어, 튼튼하게 자라나게 하고 씨앗과 열매를 맺게 한다. 길가에서 짓밟히는 질경이까지 이름 모를 잡초와 모든 생명체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골고루 쏟아 대를 잇게 하고 잉태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가을 햇살은 추석을 준비하고 마중하느라 분주하다. 들녘마다 알알이 통통하게 누렇게 익어가는 벼, 밤송이 속에서 커질 대로 크고 은은하고 탐스럽게 몸단장해서 내려온 알밤, 후두둑- 후두둑- 도토리비가 되어행인을 머리를 때려도 들국화 같은 미소를 짓게 하는 것이 가을 햇살의 은덕이고 대자연의 힘이다. 모진 비바람을 이겨내고 빨갛게 익어가는 대추, 노랗게 부풀어 살쪄가는 감, 군침을 삼키게 하는 빨간 사과, 송이송이 주저리주저리 탐스러운 포도, 묵직한 이삭을 높이 달고 있는 수수, 잣나무 위에서 꼬리를 치켜세우고 영검스레 내려다보는 청설모, 가을 해님을 닮고 있는 해바라기······.

벼도 수수도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자중하고 겸손해야 한다고 일러주며, 온갖 곡식과 과일들을 통통하고 탐스럽게 살찌우며 영글게 하며 가을 햇살이 목청껏 추석을 불러 성큼 다가왔다. 추석과 함께 자연과 어른과 조상의 은혜를 알고 보답하라는 가을 햇살의 속삭임도 들린다.

가을 햇살은 하늘도 높고 푸르게 바꾸어 놓았다. 폭염도 폭우도 심술부리다 못해 광기 어린 태풍도 모두 쫓아내고 완연한 가을, 어느 나라보다도 아름답고 행복한 우리의 가을하늘을 찾아왔다. 짓궂은 비와 태풍에 행여 흉년이 들까봐 노심초사한 사람들의 아픈 마음도 보듬어준다.

가을 햇살은 우리에게 많은 소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햇살이 찾아오기 전 이른 아침에 제법 싸늘하듯이 며칠 굶어보면 음식의 소중함을 더욱 깨닫게 되고, 비바람과 싸우고 극복하여 풍요로운 가을을 맞이하듯 누구나 겪는 어려움을 바른 마음과 고운 정서를 바탕으로 슬기롭게 인내와 지혜로 이겨내며 희망찬 미래를 준비해야 하고, 엄마 품처럼 따뜻한 사랑과 정(情)과 이로움을 주며 더불어 살고, 서로 좋은 일은 마음 모아 축하하고, 어려움은 나누고 치유하는 손길이 되고, 언제나 웃음과 크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즐기며 풍요롭고 행복한 한가위 같은 삶을 살아가라고.



/김진웅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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