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공동체 테두리 안에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다. 혼자 힘으로는 맹수로부터 몸을 지킬 수도 없고,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물건을 자급자족하기조차 어렵다. 그렇기에 사람은 힘을 합쳐 사회를 이루고 여러 가지 조화 속에 질서를 지키며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여기서 이 질서라는 것이 바로 사람의 공동체 생활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전은 질서를 '혼란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사물의 순서나 차례'라고 정의하고 있다. 질서가 사라진다면 오로지 육체적 힘이 강한 자가 우위에 서게 되는 약육강식이 초래될 것이며 궁극적으로 공동체 사회가 붕괴될 위험이 존재한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은 법과 규범, 그리고 도덕을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사회적 제도와 미덕은 중요한 원동력이 되어왔다. 수많은 고민과 수많은 희생을 토대로 지금에 이른 현대사회의 공동체 의식은 예전에 비해 훨씬 성숙했고 안정적인 체제를 갖추게 됐다.

그러나 제도화된 질서가 사회체제는 안정시켰지만 사람의 삶을 모두 윤택하게 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처럼 완전히 해소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다만 금전적인 것이 아니라도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요인들 역시 분명히 있다.

나라 형편이 좋지 않음에도 많은 국민들이 행복하다고 여기는 방글라데시의 사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질적인 것만이 행복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우리나라 역시 경제성장을 이루기 전, 배가 고프긴 했어도 이웃끼리 숟가락 개수를 서로 알 정도로 정이 넘치게 살았으며, 나라가 어려울 땐 온 국민이 합심해 위기를 극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더불어 사는 데 인색해진 것 같다. 분명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음에도 여러 흉흉한 소식이 너무도 자주 들려온다. 요즘 세상이 전에 비해 개인화되고 더불어 살아간다는 느낌이 덜하다는 데 많은 이가 공감할 것이다.

대한민국을 울렸던 김우수님을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억한다. 중화요리집 배달 일을 하며 번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으로 어려운 아이들을 후원하고, 아이들의 편지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그가 먼 길을 떠난 후에야 우리는 잊었던 무언가를 새삼 깨닫지 않았나 싶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정작 그 자신도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생활비를 쪼개 누군가를 후원한다는 생각을 쉽게 할 순 없었을 것이다. 일면식조차 없던 한 조문객이 빈소에서 목놓아 울고 '돈을 허튼 데 쓰고 살았다'며 고인에게 미안해 했다는 인터뷰와 그의 뜻을 이어 기부를 시작하겠다는 사람이 늘었다는 기사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개인과 단체 모두 사회구성원이라는 인식을 갖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많은 돈을 기부하는 것도, 많은 물품을 기부하는 것도 아닌 다른 이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는 것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노력일 게다.

올해도 어김없이 민족의 대명절인 한가위를 치렀다. 여기저기서 가족간의 정을 느끼며 풍성한 한가위를 보낸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쓸쓸히 보낸 사람들도 꽤 있었을 것이다. 우리 주변을 잠시만 돌아보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꼭 물질적 지원이 아니더라도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일은 거창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 마음 속에 조그만 밀알을 심어보기를 기대한다.



/김언현 건국대 글로컬캠퍼스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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