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면 자신의 짝을 찾으려고 서두르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추석과 같은 명절 때 '올해가 가기 전엡' 라는 친지들의 걱정을 듣기 싫은 미혼남녀들은 훌쩍 여행을 떠나버리기도 한다. 여행을 떠나 일상으로부터 탈출하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혹시나 첫눈에 반할 사람 만나기를 기대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러한 문제는 미혼남녀뿐 아니라 과학자에게도 궁금했나 보다. 그래서 첫눈에 자신의 짝임을 알아보고 반하게 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결과가 유명한 과학지인 네이처에 실렸다. 캐나다 몬트리올 대학교의 미치닉 교수는 자신의 짝을 만났을 때 그 짝이 주는 신호에 반응해서 몸 안에서 활성화되는 분자 스위치를 발견하였다. 몸 안의 분자 스위치가 작동하면 '저 사람이 내 짝이다.'라는 신호가 뇌로 전달되고 가슴이 뛰거나 눈앞이 아찔해 지는 화학작용이 일어난다고 한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페로몬 냄새를 맡을 때 이런 반응이 일어나는데, 사향노루나 사향고양이의 강한 페로몬 냄새 때문에 우리는 이 냄새를 사향이라고 부른다.

이성을 자극하는 페로몬으로 만든 향수를 사랑의 묘약으로 광고하기도 한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지의 떡갈나무 숲에서만 나는 송로버섯에 페로몬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 버섯은 우리나라의 송이버섯처럼 귀하고 비싼 식품으로 취급된다. 그리 비싸지 않은 식품인 샐러리에도 '안드로스티닌'이라는 호르몬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샐러리를 먹으면 '안드로스테놀'이라는 페로몬이 나올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페로몬에도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동일한 냄새에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인간은 진화하면서 2,300만 년 전부터 페로몬을 감지하는 유전자가 거의 사라졌다. 후각 능력도 떨어져 상대방을 인식할 때는 시각이나 청각에 더 많이 의존한다. 그래서 냄새가 좋은 사람보다는 외모나 목소리가 멋진 사람에게 더 큰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후각 능력이 남아있으므로 좋은 향수는 상대방을 매혹하는 기호품으로 애용된다.

인간은 짝을 찾을 때 후각보다 시각의 자극으로 활성화되는 분자 스위치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향수보다는 화장품이나 성형, 미용 등에 더 많은 비용을 투자한다. 동물 중에서 비단 벌레도 냄새보다는 시각으로 짝을 선택한다. 암컷이 수컷을 성적으로 유혹할 때 빛을 내는 것이다. 그런데 호주의 과학자들은 비단벌레의 수컷이 암컷 대신 맥주병과 짝짓기를 하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 연구를 하니, 사람들이 아무데다 버린 맥주병의 표면에 난 오돌토돌한 돌기에서 반사되는 불빛이 암컷이 성적으로 유혹할 때 내는 빛과 유사해서 수컷들이 맥주병을 암컷으로 착각한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이 연구를 통해 인간이 만든 공산품이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다고 주장한 호주의 과학자들이 2011년 노벨상을 패러디한 이그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그노벨상은 너무나 창의적이지만 터무니없어 보이는 연구를 한 사람에게 수여한다. 러시아의 가임 교수는 이그노벨상을 타고 10년 뒤에 진짜 노벨상을 타기도 했다.

시각이나 청각, 후각의 자극은 점점 무뎌진다. 그렇기 때문에 첫눈에 반했다고 바로 배우자를 선택하면 안 된다. 말초적 자극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으면 헤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만나면 만날수록 처음의 말초적 자극은 적어지지만 여전히 배우자의 분자 스위치를 작동시킬 수 있는 매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고난의 길이 될 것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이런 현명함을 가진다면 가파르게 증가하는 이혼율이 감소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



/백성혜(교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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