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세계 문학사와 영화사에 획기적인 획을 긋는 두 경향인 누보로망과 누벨바그는 거의 비슷하게 195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일어났다. 누보로망이 문학에서 전통 소설의 형식을 깨는 혁신적인 시도를 보여준다면 영화에서는 누벨바그가 당시 익숙하던 영화와 다른 낯선 방식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누벨바그는 트뤼포가 1953년 <카이에 뒤 시네마>에 실은 '프랑스 영화의 어떤 한 경향'이라는 비평을 통해서 예고되고 있었다. 누벨바그 감독들은 원래 영화평론가로 기성 영화들의 진부함을 비판하고 그 중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추구해나간 감독들을 발굴하여 재조명하다가 직접 자신들의 영화로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것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1959)와 샤브롤의 <사촌들>(1959), 장 뤽 고다르 <네 멋대로 해라(1960)>, 알랭 레네 <히로시마 내 사랑(1960)>에서부터이며 60년대 말까지 사조로서의 움직임이 지속된다.

누벨바그의 특징은 기존 영화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스타일, 삶에 가까운 주제, 적은 예산, 새로운 배우, 속도감 등으로 꼽을 수 있다. 기존 영화에서 배우는 극중 인물의 모습을 '연기'하였다면 누벨바그 영화에서 배우들은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대신 배우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준다. 또한 그들은 이전의 영화들에서처럼 이야기 진행에 없어서는 안 되는 대사, 잘 다듬어진 시적인 표현들을 외워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일상에서 내뱉듯이 때로 무의미한 말들까지 대사로 만든다. 그전까지는 배우가 시나리오가 요구하는 인물의 성격을 따라해야 했다면 이제 배우의 자연스러운 행동에 카메라가 따라가게 된다. 트뤼포 같은 감독은 연기하지 않는 영화를 위해 전문배우 대신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비전문배우를 발굴하여 작업하였다.

또 이들 영화는 세트에서 촬영하였던 기존 영화 촬영방식을 벗어던지고 직접 카메라를 밖으로 가지고 나가 자연광 아래의 있는 그대로의 도시의 모습을 영화의 배경으로 사용한다. 누보로망이 전통소설에서 보여주던 그럴듯하게 가공해놓은 인물의 외양이나 장소와 시간 묘사를 깨고 인물도 사건도 장소나 공간의 배경도 모호한 상태 그대로를 제시한다면 누벨바그는 계절이나 시간에 따른 자연스러운 배경, 실제 공간의 꾸미지 않은 모습을 담아낸다. 거리로 카메라를 들고 나가 현실의 모습 그대로를 담으려는 누벨바그와 인물의 모습이나 장소, 시간에 대한 세밀하고 상세한 묘사를 거부하는 누보로망은 겉으로는 상반되게 보이지만 기존 규범과 관습을 거부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각각의 장르의 형식을 창조한 점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누벨바그 영화는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도, 이야기의 기승전결도 무너진다. 이전의 영화들이 잘 짜인 소설이나 직업 시나리오 작가가 쓴 시나리오의 이야기를 재현하고자 애쓴 반면 반면에 누벨바그의 영화들은 완결된 결말보다는 모호하게 열린 결말을 보여주고, 구성에 있어서도체계적이고 탄탄한 구조가 해체된 탈구조를 보여준다. 작가가 펜으로 글을 쓰듯이 카메라로 이미지를 써나가는 작가주의를 표방하는 누벨바그 감독들은 영화란 문학 작품의 이야기를 차용하여 고스란히 재현하거나 각본대로 대사와 사건을 전달해주는 것이라는 영화에 대한 기존 관념을 부수고, 다른 어떤 것에도 기대지 않고 영화 고유의 질료인 영상과 소리만으로 지탱되는 작품을 추구한다.

20세기 문학사에 글쓰기 자체가 가진 힘에만 의존함으로써 문학의 본질적 가치를 발굴해나간 누보로망이 있다면 영화사에는 모든 외적인 영향을 배제하고 영상과 소리, 영화 자체의 자질로 제로 지점의 영화를 조명해나간 누벨바그가 있다.



/황혜영 서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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