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가 가난하면 대접을 받던 때가 있었다. 관직에 있는 선비가 가난하면 더더욱 대접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조선시대의 백성들은 그러한 선비를 모실 줄을 알았다. 물론 조선의 관료계는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 돈으로 자리를 사고 돈 받고 자리를 팔았던 탓으로 한 자리를 차고앉으면 본전의 몇 백배를 뽑아내려고 고을 원님들은 갖은 짓거리를 부렸다. 위쪽에 상납을 잘해야 자리를 부지할 수 있었으니 백성들을 후려서 뜯어낼 대로 뜯어내 착복하고 바치고 별짓을 다했다. 그래서 탐관오리란 말이 생겼다. 그것은 권력을 탐하는 무리와 더러운 관리란 말이다. 그래도 드물기는 했지만 조선시대에는 굵직굵직한 청백리가 있었다.

요새는 높은 관직에 있는 청백리를 만나기가 어렵다. 없다고 봐도 틀린 생각은 아니다. 가난한 고급관리를 볼 수가 없다. 받는 봉급을 보면 개인 기업체의 과장급인데 사는 모양을 보면 중소기업의 사장만큼이나 산다. 관리는 달마다 받는 봉급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만 하면 청백리는 저절로 되는 법이다. 그러나 묘한 재주를 부려서 뒷돈이 들어올 수 있는 줄이 없고서야 쥐꼬리 봉급을 가지고 여우꼬리처럼 호화롭게 살 수 없는 이치가 아닌가. 그래서 고급관리들은 쉬쉬하면서 몸조심하고 숨어 살 듯이 시늉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겉보기로는 검소하게 사는 척하면서 뒤로는 부귀영화를 누리는 관리들이란 따지고 보면 자기를 남 앞에서 속이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속이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짓은 없다. 가장이 속이는 짓을 하면 온 가족이 속이는 짓을 하게 되어 식솔 전체가 부끄러운 탈을 써야하는 것이다. 겉으로 청렴한 척하면서 뒤로는 정반대의 짓을 해서 뇌물을 받아 부동산 투자를 한다든가 고리채를 놓는다거나 기업체에 음성자금을 대주고 달마다 이자를 챙기는 짓들을 일삼는 관리란 탐관오리일 뿐이다. 그리고 물러나면 떵떵거리며 산다. 그래도 세상은 어떻게 재산을 모았느냐고 입방아만 찧지 형벌은 눈 먼 장님처럼 모른 척 한다. 만일 뒤로 끌어들인 돈을 앞으로 토해내게만 한다면 탐관오리는 없어지는 법이다.


예(禮)와 의(義)가 순조롭지 못하면 법이 법대로 서질 못한다. 그렇게 되면 수치스러운 것이 뻔뻔스럽게 되어 정직하고 순진하게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바보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똥 싼 놈이 방귀 뀐 사람을 욕한다는 속담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부끄러운 줄을 알면서 말을 삼가고 행동을 조심하고 자리를 보존하고 윗사람의 눈 밖에 날까 보아 겁이 나고 부정한 짓들이 탄로 날까 보아 말을 삼가거나 행동을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게 하려고 말을 삼가고 행동을 조심하는 자가 선비가 된다면 쥐꼬리 봉급을 가지고도 당당하게 사는 청백리가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러나 봉급만 가지고 가난하게 사는 고급관리나 장관이나 아니면 기관장을 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보았다고 할 사람은 별로 없을게다. 그러니 어진 세상일 될 수가 없다.

관료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하는데 썩히는 짓을 스스로 범하니까 천하는 도둑의 세상으로 변해 가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선비라고 할 수 있는가? 언제나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지니고 말을 삼가며 행동을 조심하고 사방에 나아가 임금의 명을 받아 맡은바 일을 완수하여 임금을 욕되게 하지 않는 자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일가친척들로부터 효자란 말을 들으며 온 마을 사람들로부터 우애롭다고 칭찬을 받는 자, 그리고 말한 것은 반드시 실천하고 실행해서 반드시 성과를 거두면 빡빡하고 강직해 소인이라 하겠지만 그래도 선비쯤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정치를 맡고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한 말들이 밖에 안 되는 작은 기량을 지닌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치자의 임기가 끝날 적마다 교도소 운운하지 않은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선비가 치자가 되지 않는 한 우리의 현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12월 19일은 우리의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청백리를 기대 할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이에 가까운 사람을 선택한다면 조금이나마 소금으로 썩히는 짓을 범하지 않을 것이 아닌가? 우리가 사는 세상 이대로는 안 된다. 어두운 밤길과 밝은 낮 길은 다른 것이다. 어느 누가 어두운 밤길을 걷기를 좋아하겠는가. 기대해 본다. 밝은 낮 길을 걷기를 ∙∙∙∙ !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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