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민족의 역사를 보면 언제나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온 것 같다. 특히 유태민족의 이산생활이 시작된 후에 그 위협은 도를 더해간 것 같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생명의 안전이 언제나 제일의 문제였다. 하지만 생명이 위협받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여호와를 찬미하는 노래를 부른다.

나치 독일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도 유태인들은 신에 대한 감사의 찬송을 불렀다. 그 노래의 구구절절에서 표현된 찬미, 그것은 유태인의 신앙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유태인의 생활과 사고방식은 그들의 종교적 신앙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들의 역사, 문학, 미술, 음악 모두가 종교적 신앙의 표현으로 가득 차 있다. 서구문학의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는 히브리 문학은 사실 여호와 신에 대한 감사와 찬미의 표현이 그 대부분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 내게 부족함이 없도다. 나로 하여금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도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의 막대기와 주의 지팡이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나를 위하사 내 원수 앞에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부으시니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 진실로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의 사는 날까지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전에 영원토록 거하리로다.”

여호와를 찬미하는 다윗의 시이다. 유태민족이 바빌론의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에 돌아온 후로는 “시편”이 그들의 찬송가가 되었고 그것은 유태교와 기독교의 두 예배시에 함께 오늘까지 남아있다. 시편에서 볼 수 있듯이 유태인의 노래는 그 대부분이 여호와를 찬양하고 경배하는 감사와 찬송의 표현이다. 그들의 생활 구석구석에서 여호와신과의 관계를 찾아볼 수 있고 그들이 비록 어떤 역경에 처해 있더라도 여호와를 경배하는 찬송을 잊지 않는다. 바빌론의 고된 포로생활 속에서 유태인들은 고향을 떠난 향수를 달래며 노래를 불렀지만 그 노래 속에서 여호와를 찬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유태인의 생활 속에서 종교적 신앙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 곳이 없다. 그들의 식생활, 의생활이 모두 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유태인은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몸을 깨끗이 하고 손을 언제나 깨끗이 씻는 것은 여호와 신과 접촉하는 신성한 행위이며 그렇게 했을 때 신의 축복을 받게 된다고 어린이에게 가르친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대로부터 산신령에게 기도를 올릴 때에 목욕재계하는 습관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중세기 구라파에는 흑사병이 만연되어 당시의 구라파 인구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간 일이 있었다. 이때 구라파에서는 페스트를 만연시킨 것은 유태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유태인은 흑사병에 걸리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유태인이 흑사병에 잘 감염되지 않는 이유는 극히 간단하다. 당시만 하더라도 구라파인의 생활은 야만적이었다.

위생관념이 거의 없어 목욕하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 대부분의 서민들은 비누가 무엇인지 몰랐다고 하니 얼마나 불결한 생활이었다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비하여 유태인은 오래 전부터 목욕을 하고 식사 전후에 손을 깨끗하게 씻는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여호와께 감사드려야 하고 가까이 지내야 하기 때문에 몸을 깨끗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종교적인 규칙이며 신앙생활의 습관이었다. 평소에 몸을 깨끗이 하는 습관이 그들을 무서운 전염병으로부터 구해준 원인이 된 것이다. 이것은 유태인의 청결함을 말해주는 에피소드 이지만 그들의 일상생활이 얼마나 신앙과 밀착되어 있는가를 여실히 말해준다.

유태인은 신앙심이 두터운 민족이다. 그러기에 여호와에게 향한 감사와 찬미는 그들의 생활에서 그칠 날이 없다. 식사할 때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잠자기 전후에 역시 감사기도를 올린다. 유태의 어린이들은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는 습관을 배우기 이전에 여호와께 감사하는 것을 배운다. 부모가 의도적으로 감사하는 태도를 가르치는 것은 물론 신에 대한 감사의 분위기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은연중에 감사의 생활을 몸에 익히게 된다. 어떤 일이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필요한 것이다.

특히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을 주신 여호와와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유태인들은 생각한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곧 남에게 감사함을 받을 수 있는 선행을 낳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부터 감사하는 태도를 형성하는 것은 가정교육에서 강조되어야 할 일이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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