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보이지 않는 집에서 10년이 넘게 살던 어느 날, 흙이 보이는 집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신음처럼 올라왔다. 퇴근 후, 해가 지기 전에 먼저 어두워진 집 안에 들어서며 서쪽으로 창이 난 집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어머니,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란 시구를 떠올리며 불을 켜지 않고 저녁 준비를 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동쪽과 서쪽으로 넓은 창이 있고 흙이 보이는 집에 살고 싶은 마음이 깊어갔다.
우레탄이 깔리지 않은, 흙 그대로의 운동장이 동쪽을 향한 넓은 창 앞에 한 장의 커다란 네모 도화지처럼 펼쳐져 있다. 6층에서 내려다보이는 운동장은 나에게 평안을 주고 감사를 불러일으킨다. 흙이 보이는 집을 원했는데 운동장의 흙 뿐만 아니라 숨소리가 들릴 듯한 푸른 산과 해와 달이 떠오르는 하늘을 덤으로 받았다는 생각에 감사가 치솟아 오른다.
겨울 한낮에 집 안으로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것도 괜찮다. 햇빛은 온종일 유리창 밖에서 산과 속삭이며 산을 빛내고 그 밝음이 내 마음에 투영되어 나조차 환해지기 때문이다. 오후가 되어 햇빛이 서쪽 유리창을 통해 집 안을 잠시 기웃거리면 왜 그리 반가운지. 고대하던 손님이 찾아온 듯 햇살을 어루만진다. 8년이 넘도록 누리는 행복이다.
/박순희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