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취미가 없는 딸 때문에 애를 먹던 지인이 있다. 집에서의 행동이나 마음 씀씀이를 보면 공부도 잘 할 것 같은데 성적표를 보면 배신감마저 든다고 했다. 학생답지 않게 유난히 멋을 부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성적이 낮아 변두리 특성화고에 겨우 들어가 아슬아슬하게 다니는 딸과, 일본의 국립대학에 장학생으로 간 아들이 비교돼 구박도 많이 하고 갈등도 많았던 모녀 사이다. 다행히 요즘 대학 입학이 수월해져 딸이 시골에 있는 패션 계통 전문대학에 진학했다고 들었다.

며칠 전 행사에 화려하게 성장하고 나타난 지인은 딸 자랑이 한창이었다. 공부를 하지 않아 그렇게 속을 태우던 딸이 예술 쪽에 취미가 있는지 학교 가기를 즐긴다는 것이다. 화장을 해도 얼굴 결점을 완벽히 커버해 분장 수준으로 아름답게 연출하고, 의상 매칭에도 안목이 있어 '같은 옷, 다른 느낌'으로 코디를 잘 한다는 것이다. 딸 솜씨라며 자신의 모습을 자랑하는데 일류 디자이너의 손을 빈 듯 우아했다. 더구나 공부라면 그토록 질색하던 딸이 요즘은 한자 공부에도 열심이라는 것이다.

딸이 패션에 관해서는 무엇이든 즐겁게 하고 더 어려운 일에도 도전하며 열심히 했지만 다른 과목에는 관심도 없고 수행능력도 많이 떨어져서 지인은 부족한 인문학적 역량을 채우기 위해 한자 배우기를 권했지만 시큰둥하게 생각하고 여전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딸이 타투(문신)를 배운다는 얘기를 듣고는 타투 문양으로 한자를 사용하면 고객의 운명과 성향에 맞는 글자를 그려줄 수 있어 고객이 대단히 만족할 것 같다며 배우기를 권했다고 한다. 공부로서의 한자에는 전혀 흥미 없던 딸이 이를 받아들여 열심히 한자 공부를 해 자격시험도 몇 단계나 올랐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소학도 읽고 엄마와 함께 한문 문장에 대해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딸과의 갈등도 많이 해소됐다고 한다.

옛날 에머슨 (미국 사상갇시인)이 기르는 송아지를 헛간으로 들여보내려는데 도저히 말을 듣지 않았다. 부인의 손을 빌어도 뻗대는 송아지를 당해낼 수 없었다. 그때 하녀가 달려와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송아지 입에 물리니, 배가 고팠던 송아지는 그게 어미 젖인 양 빨았다. 이 때 하녀가 한 발자국씩 뒷걸음질해 송아지를 헛간의 우리 안까지 들일 수 있었다고 한다.

억지, 강행이 아니라 상황을 판단한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 어머니라야 딸에게 어머니의 욕구도 심어줄 수 있다. 무조건 너를 위한 일이니 공부나 하라기보다 어떻게 하면 공부하고 싶어할 지 다시 한 번 자녀의 속마음을 알아보는 일이 우선 돼야 할 것이다. 타고난 자신만의 재능을 인정해준 다음 '너를 위한 일'이라 해야 한다. 상형문자를 멋지게 그려 넣으려고 한자를 배우는 지인의 딸처럼 그것이 정말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믿는 '너'가 있어야 너를 위한 일이 될 것이다.



/유인순 한국문인협회 천안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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