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토록 많은 불행을 겪으면서도 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단 한 번의 인생에, 단 한 번의 이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실패라는 것이 있어서 좋을 것인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시대에 이토록 슬픈 일이 있어도 될 것인가?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얻지도 못한 채 이렇게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아, 인생은 길다. 그렇더라도 불행의 종류는 얼마나 많은가. 이 정도면 좋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예상도 할 수 없는 슬픔이 우리를 덮친다. 죽을 때까지 그 모습을 바꾸면서 인간에게 덮쳐오는 갖가지 불행.

부자가 되던 가난뱅이가 되던, 어느 쪽으로 굴러가든 우리가 인간인 이상 우리는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꾹 참는 것, 참고 또 참고 다시 참고 죽을 때까지 참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을 위해 우리들 인간은 이렇게 참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인생이 텔레비전의 건전한 홈드라마 같다면∙∙∙∙. 그러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바보스러운 건전한 홈드라마를 내보낼 수 있을까? 현실의 우리들의 삶이 홈드라마처럼 바보스럽지 않고 훨씬 비참하기 때문일까? 그러나 나는 이런 건전한 홈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화가 나서 텔레비전 세트를 부숴버리고 싶다. 제발 그만! 우리들 인간의 인생은 훨씬 비참하다! 이렇게 외치고 싶다. 죽고 싶다. 죽어버리고 싶다. 아, 죽어버리면 얼마나 편할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죽지 못하는 나,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아, 죽어버리고 싶다! 이렇게 외친다음 아, 죽지 못하겠다. 죽지 못하겠다. 어떻게 해도 죽어버릴 수가 없구나 하고 외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가슴에 가득 찬 슬픔, 만년설(萬年雪)처럼 녹을 것 같지 않은 마음의 아픔을 갖고 아 그래도 인간은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남북 간에 전쟁이 나면 어떻게 될까? 이런 일을 생각하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전쟁이 터지면, 그때 나는 나의 고뇌와 함께 이 인생과 헤어질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아, 이젠 어떻게 되도 괜찮다.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의 밑바닥에서는 안돼, 안돼, 자포자기해서는 안돼 하는 소리가 들린다. 신(神)은 도대체 인간을 얼마나 괴롭히면 마음이 편안해질까? 하나님! 제발 이정도로 끝내주십시오! 문득 이렇게 중얼거려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도대체 이 세상에 몇 사람이나 있을까? 이미 사방이 막히고 나갈 문도 없다고 생각할 때 그래도 계속 살아가라고 하는 것이 신(神)인가, 그 잔인함! 운명에 희롱당하고 지쳐서 미칠 것 같아도 또 불행이 닥친다. 뱀을 때려죽이는 것처럼 살아가야 하는 우리 인간, 아, 그 숙명!

인간은 자기에게 중요한 것을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력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에 의욕도 솟는 것이다. 중요한 것을 획득할 수 없음을 알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라고 하는 도덕이 이 세상에 존재해도 좋은가. 나는 이 여자를 행복하게 할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 남자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노력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남자나 여자에게 노력하라고 해서 도대체 어떤 성과가 있을 것인가. 나의 선이나 노력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다고 생각한 남자나 여자에게∙∙∙∙ 아, 도대체 사람들은 무엇을 설교하려고 하는가. 자기가 정열에 불타고 있으면 주위의 사람들도 정열에 불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자기에게 맛있는 것이면 자식에게도 맛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기가 활기에 차 있으면 다른 사람도 활기에 차 있다고 생각한다. 왜 활기가 없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척도(尺度)로 남을 재는 것이다. 자기가 가정을 갖고 싶다고 바랄 때에는 다른 사람도 그렇게 바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기의 행복척도로 다른 사람을 잰다. 그러나 자기에게는 장밋빛 행복이 다른 사람에게는 가시덤불의 불행인 경우도 있다. 애정의 강요는 인간에게는 무서운 일이다. 내가 저 사람과 함께 지내고 싶다고 생각하면 저 사람도 나와 함께 지내면 행복하리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는 않다. 자기가 바라는 것을 다른 사람도 함께 원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리고 인간은 다른 사람을 참으로 사랑하며 사랑할수록 자기의 방식이 나오기 마련이다. 적당하게 사랑한다면 자기의 방식은 별로 확고하지 않다. 그러나 그 사람과 자기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사람을 사랑하면 어쨌든 자기의 방식을 고집하게 된다. 인간은 결국 자기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물론 서로의 방식이 일치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남자의 사랑하는 방식이 바로 상대 여성의 사랑 받는 방식이기도 하고 어떤 여자의 사랑하는 방식이 바로 상대 남성의 사랑받는 방식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현대인이 사랑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깊이 사랑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깊이 사랑하면 반드시 사랑의 비극을 체험할 것이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