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상무’ ‘빵 회장’ ‘폭언 우유’등 갑(甲)의횡포에 따른 을(乙)의 반란이 가히 위협적이다. 평소 라면을 먹을리 만무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포스코) 상무는 기내에서 라면이 짜다고 승무원을 폭행하는 바람에 직장에서 짤렸다. 가족의 신상까지 인터넷에 공개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나름 할 말이 있겠지만 국민적 공분 앞에서 침묵해야 했다. 장지갑으로 호텔 지배인 뺨을 때린 제빵업체 회장의 폐업 선언도 과거엔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안타까운 건 다혈질인 이 업체 회장의 폐업 결정으로 소속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전후 사정은 뒤로하고 순간의 상황이 SNS에 폭로되면서 이들은 순식간 악덕 기업주가 되고 말았다. 영업 팀장의 폭언과 욕설은 대표적 갑의 횡포로 취급되면서 국민적 공분과 함께 우리사회 갑들을 굴복시키고 자성케 하는 긍정적 요인을 제공했다. 그를 고용한 남양유업은 충견과도 같았던 영업사원을 해고한 데 이어 90도로 허리 굽혀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그리고 다시는 갑의 입장에서 을들에게 재고 '밀어내기'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 갑의 횡포 오랜 관행


분위기에 놀란 잠정적 피의자 현대백화점도 계약서에 '갑'과 '을' 대신 '백화점'과 '협력사'로 용어를 바꿔 쓰기로 선방조치 했다. 종속관계를 동등한 계약관계로하겠다는 것인 데 밀어내기와 납품단가 후려치기 관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맹사업법 등이 있지만 프렌차이점 가맹점주들은 여전히 본사의 떠넘기기와 인테리어 강제 교체 등의 압박에 시달린다. 일부 악덕 건설업체는 분양이 100%를 상회하는 데도 하청업체 공사대금을 6개월이 넘는 약속어음 결제에다 현금 할인까지해주며 탐욕의 배를 채우고, 돈의 위세로 기관장 행세를 하며 특권을 누리고 있다. 때문에 을들의 반란은 유통업계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그동안 갑의 횡포에도 살기위해 숨죽이고 있던 곳곳의 을이 일제히 SNS를 통한 폭로와 여론몰이에 나섰다. 그동안 을들을 괴롭혀 온 사악한 업주들은 분노와 공분의 표적이 되지 않을까 안절부절이다. 을의 SNS 폭로는 기존 제도가 약자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 불공정 거래 감시·개선 등을 SNS에 선점당한 정부와 국회는 뒤늦게 부산하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도 불공정 거래 관행을 차단하기 위해 악덕기업 색출에 칼을 뽑아들었다.


- 감정적 반란을 역기능 불러


하지만 국민적 공분 속에 을의 반란에 따른 갑의 굴복에 대한 역기능 목소리도 만만히 않다. 을과 상생하는 선량한 갑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SNS를 통한 무차별 여론몰이는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져도 이미 여론 재판이 끝난 후엔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무근의 정보라도 SNS를 통해 여론의 공분을 얻으면 갑은 속수무책인 상황이 온다. 그 후의 처방은 죽은자에게 링거를 투입하는 것과 다름없다. 갑의 횡포를 두둔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갑의 횡포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하고 근절돼야 한다. 다만 감정적 반란은 여론의 약자인 갑을 '또 다른 을'로 만들 수 있다. 경제민주화란 대세 앞에 정당한 을의 반란은 갑과 을이 동등한 관계로 재정립하는 순기능을 하지만 마녀사냥식 신상을 털기는 그 피해가 또다시 을에게 돌아온다는 함정이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이광형 논설위원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