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의 횡포 오랜 관행
분위기에 놀란 잠정적 피의자 현대백화점도 계약서에 '갑'과 '을' 대신 '백화점'과 '협력사'로 용어를 바꿔 쓰기로 선방조치 했다. 종속관계를 동등한 계약관계로하겠다는 것인 데 밀어내기와 납품단가 후려치기 관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맹사업법 등이 있지만 프렌차이점 가맹점주들은 여전히 본사의 떠넘기기와 인테리어 강제 교체 등의 압박에 시달린다. 일부 악덕 건설업체는 분양이 100%를 상회하는 데도 하청업체 공사대금을 6개월이 넘는 약속어음 결제에다 현금 할인까지해주며 탐욕의 배를 채우고, 돈의 위세로 기관장 행세를 하며 특권을 누리고 있다. 때문에 을들의 반란은 유통업계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그동안 갑의 횡포에도 살기위해 숨죽이고 있던 곳곳의 을이 일제히 SNS를 통한 폭로와 여론몰이에 나섰다. 그동안 을들을 괴롭혀 온 사악한 업주들은 분노와 공분의 표적이 되지 않을까 안절부절이다. 을의 SNS 폭로는 기존 제도가 약자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 불공정 거래 감시·개선 등을 SNS에 선점당한 정부와 국회는 뒤늦게 부산하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도 불공정 거래 관행을 차단하기 위해 악덕기업 색출에 칼을 뽑아들었다.
- 감정적 반란을 역기능 불러
하지만 국민적 공분 속에 을의 반란에 따른 갑의 굴복에 대한 역기능 목소리도 만만히 않다. 을과 상생하는 선량한 갑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SNS를 통한 무차별 여론몰이는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져도 이미 여론 재판이 끝난 후엔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무근의 정보라도 SNS를 통해 여론의 공분을 얻으면 갑은 속수무책인 상황이 온다. 그 후의 처방은 죽은자에게 링거를 투입하는 것과 다름없다. 갑의 횡포를 두둔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갑의 횡포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하고 근절돼야 한다. 다만 감정적 반란은 여론의 약자인 갑을 '또 다른 을'로 만들 수 있다. 경제민주화란 대세 앞에 정당한 을의 반란은 갑과 을이 동등한 관계로 재정립하는 순기능을 하지만 마녀사냥식 신상을 털기는 그 피해가 또다시 을에게 돌아온다는 함정이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이광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