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풍령을 넘어온 선비는 영동, 옥천, 보은을 지나 말뫼 미륵원에서 하룻밤 유숙한 뒤 문의, 청주, 장호원, 여주를 지나야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떠날 수가 있었다. 그러나 1980년 대청댐이 생기면서 기존 들길은 대부분 물에 잠겼고 해발 80미터 아래 4000여 세대의 삶은 모조리 수장되고 말았다. 그 대신 산허리를 도는 신작로가 만들어져 새 삶은 편리함으로 이어졌지만 남아있는 고갯길이나 산골짜기 다랑논 밭길은 인적이 끊기고 잡초와 나무가 우거져 신작로에서 먼발치로 바라보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러다가 대청호 둘레길이 만들어졌고 옥천군에서는 향수 백리길, 보은군은 보은길, 청원군은 청남대 사색길, 대전광역시는 대청호반길을 만들었다. 그 후 2010년 7월 대전발전연구원 내에 '녹색생태관광사업단'이 발족하면서 이 모든 길을 종합해 아우르는, 본선 21개 코스와 지선 5개 코스로 나눠지는 대청호오백리길이 정해졌다고 한다.
총 둘레가 249.5㎞라고 하는데 호수를 끼고 도는 매력적인 길이라 즐겨 찾는다. 그러나 인적이 드물고 길을 잘못 들었다가 호수의 막다른 낭떠러지를 만나 혼이 나기도 해서 혼자 가기가 매우 어렵다. 지난 주말 약 20여 명이 12구간인 '푸른들비단길'을 걸었다. 충북 옥천군 동이면 청마리의 폐교로부터 시작한 산행은 말티고개를 넘어 위청동에 들어섰다. 그곳은 '푸렁골'이라고도 불리는데 스물다섯 처녀로 산골 마을 총각에게 시집 와 50여 년을 살고 있다는 김봉난 소설가가 사는 곳이었다.
옥천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 푸렁골은 조각배로 강을 건너고, 고개 넘어 몇 시간을 걸어야 만나는 곳인데 예전에는 7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떠났고 할머니만 혼자 남아 낮에는 밭일하며 죽기 전에 꼭 탈고해야 할 소설에 대한 꿈을 꾸며 살고 있었다.
2010년 7월 시작한 대청호 오백리길 조성이 지난 4월 30일 마무리를 지었다고 한다. 그동안 미완성된 21개 구간은 길 찾기에 애로가 많았으나 지난 1∼2월 전 구간에 걸쳐 600개의 화살표지를 삼거리 갈림길과 주요 지점에 부착했고 이미 설치됐던 이정표의 잘못된 부분도 수정해 길 찾기가 훨씬 수월해졌다고 한다.
대청호오백리길은 지난해 아시아도시경관상을 수상했으며 수상 기념 조형물 제막식도 치러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 길이 명품 길로 거듭나려면 대청호지역 녹색 생태보전과 활성화라는 과제가 남는다. 이는 어느 특정 층이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맑은 호수와 아름다운 길이 되도록 지역민은 환경보전에 더욱 애써야 할 것이고 관계기관은 이 길과 관련된 다양한 사업 구상에 온 힘을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한옥자 청주문인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