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襄之仁 송양지인

宋 송나라 송:송나라

襄 도울 양:돕다, 오르다

之 갈 지:가다, ∼의(관형격조사)

仁 어질 인:어질다, 자애

풀이-송나라 양공의 인덕이라는 뜻이다. 이는 몹시 착하기만 하여 아무 쓸데없는 아량을 베푼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유래-송나라의 환공이 죽고 태자 자보가 왕위에 올라 양공이 되어 그의 서형 목이를 재상에 임명하여 송은 잘 다스려졌다. 양공 재위 칠년 째에 운석이 다섯 개나 떨어졌다. 이를 제후의 으뜸이 될 수 있는 조짐이라고 해석한 양공은 야심을 품기 시작했다.

이때, 정나라가 양공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초나라와 교류하였다. 이에 분노한 양공은 정나라를 공격하였다. 그러자 초는 정을 구하러 왔다. 양공은 홍수에서 이들을 맞아들여 싸우기로 하였다. 초군이 속속 강을 건너오고 있었으나 아직 다 건너지 못하여 진용을 충분히 갖추지 못하였다. 송의 군대는 완전히 정비되어 있어서 신하 목이는 이렇게 주장했다. "적은 수가 많고 아군은 적으니, 적군이 강을 다 건너 진용을 갖추기 전에 공격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양공은 동의하지 않았다. "군자는 상대편의 약점을 노리는 법이 아니다. 적군의 진용이 다 정비 되지 않은 틈을 노려 공격을 한다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다."

그러는 사이 초군은 강을 거의 다 건너오고 있었지만 아직 정돈중임을 보고는 목이는 또 말했다. "초는 강적입니다. 지금 공격한다 할지라도 승리를 장담 못합니다.

싸움은 이기기 위하여 하는 것이니 적의 약점을 노려 공격하는 것도 훌륭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양공은 스스로를 대단한 군자로 여겼다.

그는 초의 군대가 완전히 정돈되는 것을 기다려 정비가 끝난 다음 공격하였다.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강한 초군 앞에 약소한 송군은 크게 참패를 당하였고 양공도 허벅지에 상처를 입고 다음해에 죽고 말았다. 오늘날처럼 약점을 노려 상대를 무참하게 밟아버리는 험한 세상에서는 바보스럽다 하겠지만 이런 양공의 마음이 더 그리운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시인·전북대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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