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에 시작한 공직 생활을 반백의 숱 없는 머리가 된 이순 즈음에 마침표를 찍는 감회가 새롭다. 엊그제만 해도 공직을 마친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았는데 요즘 만나는 이들마다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다 보니 이제 떠나야 된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내가 공무원을 시작할 때는 공무원이 그다지 인기가 높은 시절이 아니었다. 첫째 이유는 봉급이 박하다는 데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공무원 생활에 한동안 잘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표를 늘 지니고 다녔고 언젠가부터는 연금혜택이 주어지는 20년까지만 하고 다른 일을 하겠다는 희망으로 고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세월은 흘러 오늘 이 순간까지 와있고 인생의 절반 이상을 후딱 살아왔다. 돌이켜 보니 참으로 긴 세월이었고 허무한 마음이 앞서는 게 솔직한 심경이다.

흔히 하는 말대로 대과 없이 공직을 마쳤다는 것에 자위하며 주위 사람들, 특히 동료 선후배 공직자들에게 감사해 하며 말없이 떠나는 게 바람직할 듯하다. 요즘 시작하는 후배들을 보면 세대 차이를 느끼기 이전에 행정조직의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위축되고 경직됐던 내 공직 생활과 비교해 보면 쾌활한 건 기본이고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모습이 무엇보다 긍정적으로 보인다. 요즘이라고 힘들고 난해한 민원이 없진 않지만 공직 초년병 시절엔 연이어 터지는 골머리 아픈 민원과 산적한 업무처리로 마음 편한 날이 없었던 것 같다. 상사는 왜 그리 무서웠던지, 하루 중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사무실에서 보내야 했는데 밝은 표정으로 활기차게 지내온 날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정해진 기간까지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에 앞서 전반적인 공직 생활에 대한 물음표가 나에게 화살로 날아온다. 소신껏 내 몫을 성실히 해냈는지, 선택·판단은 적절했는지, 적극적이고 창의적이었는지, 주위 눈치만 보는 기회주의자는 아니었는지, 공직 신분을 망각하고 내 안위에 치중하지는 않았는지, 자기중심적 생각으로 동료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는지, 청백리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지, 가슴깊이 새겨가며 반성해 볼 대목들이다.

이제부터라도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후회 없는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선 공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다가 잃어버린 나 자신부터 찾아야겠다. 가벼운 가방 하나 둘러메고 무작정 길을 떠나는 거다. 철저하게 외롭고 고독한 고행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남을 보기위한 유리창은 맑게 닦으면서도 자신을 비춰 볼 수 있는 거울을 닦는 일엔 게을리 했으니 더 늦기 전에 내 실체를 확인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허기만 메울 정도로 먹고 이슬이나 피할 수 있는 산과 들에서 노숙하며 그야말로 집시처럼 떠돌다 올 계획이다. 그 기간이 석 달이 될지 일 년이 될지는 나도 모른다. 바라건데 이른 시일 안에 나를 찾아 남은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갈 계획을 세우고 공직 생활에서 진 빚도 갚는다는 각오로 이웃과 함께 하는, 제대로 된 내 삶을 살고 싶다.



/김우배 청주시 농업정책과장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