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포근하고 따뜻한 정감이 그리움으로 넘쳐흐른다. 친정 이란 접두사가 붙으면 괜스레 미안하고 안쓰러워지면서 여자들만의 공감대가 따로 형성되곤 한다. "나 지금 가면 안 돼요. 우리 딸이 속상할 때 전화로 하소연하고, 여름이면 보내준 오이지가 어찌 그리 아삭 아삭 맛나냐고 겁나게 먹는데 내가 가면 우리 딸 누가 챙겨요?" 죽음의 순간에도 친정엄마는 자식 걱정만 하다가 떠나서 객석을 꽉 메운 관객들의 가슴을 찡하게 흔들며 눈물샘을 자극한다.

남은 딸은 뒤늦게 통곡을 하며 못 다한 말들을 독백으로 쏟아낸다. "엄마 미안해. 엄마는 나를 제일 사랑했는데 내가 제일 사랑한 사람은 엄마가 아니어서 미안해.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 해서 미안해. 다음에 내 딸로 태어나면 못 해준 것 다 해 줄게." 나오면서 가슴이 먹먹하다. 아무리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가장 미련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기 속에서 살면서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당연시 하듯 부모가 베푸는 것을 당연시 하고 언제까지나 내 부모가 살아계실 것이라고 착각한다. 내 엄마에게도 가슴 뛰던 소녀 시절이 있었고 엄마도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자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 한다. 취침 전 순서대로 여러 가지 화장품을 바르는 엄마에게 어린 딸이 이건 왜 바르냐고 묻는다. "주름살 없어지라고" 하자 "그럼 할머니가 발라야지" 하며 외할머니에게 드리려 하자 "이게 얼마짜리인데" 하며 빼앗는다.

그러자 어린 딸은 "나도 이다음에 크면 좋은 것은 다 나만 쓰겠다"고 해서 많은 딸들의 가슴을 아리게 쥐어짠다. 고려장이 행해지던 시절 부모는 자식이 내려갈 때 길을 잃을까봐 지게 위에서도 나뭇가지를 꺾으며 갔다고 한다. 그런데도 자식은 풍습이라고만 생각하고 산꼭대기에 부모를 내려놓고 오자 따라온 자식이 "지게는 가지고 가야 내가 나중에 아버지 갖다가 버리지요"해서 부모를 다시 지고 내려왔다던 고사가 겹쳐지며 본을 보이는 것만큼 훌륭한 교육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자식들이 말 안 듣고 낳아준 것 까지 불평할 때 "꼭 너 같은 자식 하나만 낳아서 키워 봐라" 고 하나 보다.

하루가 다르게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점점 편리한 것을 찾는 것이 인지상정이 되다보니 효(孝)는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시간낭비인 것 같이 잘못 인식한다. 집을 지을 때도 기초가 튼튼해야 함이 기본인데, 이렇게 잘못 가고 있는 세태에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는 논어의 경구를 생각하게 한 뮤지컬 '친정엄마' 공연 유치는 참으로 의미 있었다. 사회의 목탁이라는 언론의 기능을 확인했다고 할지. 톨스토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했다. 더 늦기 전에 자식에게 하는 몇 분의 일이라도 내 부모에게 사랑을 전하자.



/이영희 단재교육원총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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